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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커스

한국의 전통놀이 - 2

전승집단과 놀이

전통놀이는 전승집단의 규모에 따라 대동(大同)놀이와 소집단놀이, 개인놀이로 눌 수 있다. 대동놀이는 공동체 구성원 다수의 참여와 후원, 그리고 관심 속에서 진행되는 비일상적 놀이인데 비해 소집단 놀이는 연령, 직업, 친교 등을 매개로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벌이는 일상적 놀이이다. 소집단 놀이에는 투전과 화투 등 개인의 역량이 강조되는 내기놀이도 포함되는데, 이들 놀이의 경우 여럿이 함께 하지 않으면 놀이의 재미가 줄어드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편 개인놀이는 놀이의 집단성보다는 놀이자의 개별성이 부각되는 놀이이다. 소집단 놀이의 경우 어른과 어린이의 놀이로 나눌 수 있으며, 어른의 놀이는 다시 여성과 남성의 놀이로 나눌 수 있다.

1. 아이들의 놀이

먼저 생업과 가사노동을 책임진 어른들의 경우 여럿이 함께 놀이할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소집단놀이의 전승이 활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업에 덜 매여 있던 어린이들의 경우 놀이시간의 확보와 놀이집단의 구성이 용이했기 때문에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남자 아이들이 하는 놀이는 고누, 땅재먹기, 자치기, 장치기, 말타기 등 신체 동작이 활발하고 주변 공간을 넓게 사용하며 경쟁의 원리를 바탕으로 행해지는 놀이가 많았다. 이에 비해 여자 아이들이 하는 놀이는 공기놀이, 망차기와 같이 단계가 조금씩 높아짐에 따라 목표의 달성이 어려워지는 놀이들이 많았다. 이와 같이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의 놀이가 구분되어 있었지만 나이가 거릴 경우에는 함께 놀기도 하였다. 한편 양반집안의 어린이들은 대개 실외에서의 역동적인 놀이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받았기 때문에 주로 실내에서 놀았다. 고을의 이름을 외워야 이길 수 있는 고을모둠, 벼슬의 위계를 파악하는 승경도, 전국의 명승지를 신분에 따라 유람하는 남승도놀이 등이 양반집안 어린아이들의 놀이에 해당한다.

- 고누
고누는 땅이나 나무, 돌 등에 놀이판을 새겨 넣고 자신의 말을 움직여 상대의 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잡아서 승패를 가르는 놀이로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19세기 초 『물보(物譜)』라는 책에서 '우물고노(格五)'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였다. 그러나 황해도 봉산군 원산리에서 출토된 10세기 초 청자 가마토에서 고누 유물이 발견된 것을 보면 고누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14세기의 개인 정원인 전라남도 담양의 '소쇄원(掃灑園)'의 마루에도 참고누판이 새겨 져 있는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고누는 우물고누, 호박고누, 넉줄고누, 곤질고누 등 종류가 다양하다. 또한 그림판과 가지고 노는 말의 숫자도 다양하며 놀이 방법도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고누의 종류
하나는 우물고누, 호박고누처럼 상대방의 말을 움직이지 못하게 가두어 두면이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줄고누, 참 고누처럼 일정한 조건을 만들어 상대방의 말을 다 따면 이기는 것이다. 여러 고누가 있지만 그 중 가장 많은 흔적이 발견되는 곤질고누는 다른 고누와 달리 말을 한 개씩 번갈아 놓아 가며 두는데 놀이 방법이 가장 복잡하고 다양한 묘수가 나온다. 먼저 놀이판을 그리고 각각 12개씩의 말을 가지고 시작한다. 차례는 보통 실력이 좀 더 낮은 사람이 먼저 두는데, 자기 차례가 되면 24개의 교차점 중 한 군데에 말을 한 개씩 놓는다. 가로나 세로, 혹은 대각선으로 세 개의 말이 나란히 놓이면 '꼰'이라고 한다. 따라서 세 개의 말로 '꼰'을 만드는 동시에 상대의 말 세 개가 나란히 놓이지 못하도록 방해하여야 한다.

자신의 말 세 개가 나란히 놓이는 '꼰'이 되면 '꼰'이라 외치고 상대방 말 중에서 한 개를 골라 말판 밖으로 꺼낸다. 말을 떼어낸 자리에 별표를 하거나 다른 표시물을 놓아두는데 이 자리에는 아무도 자기 말을 두지 못한다. 그리고 24개의 교차점이 다 차도록 번갈아가며 말을 놓는다. 더 이상 말을 놓을 수 없게 되면 별표 한 자리가 빈자리가 되도록 한다. 그 후 빈자리 옆에 있는 다른 말들을 움직여 계속하여 '꼰'을 만들고 '꼰'을 하나 만들 때마다 상대의 말 하나를 제거할 수 있다. 이렇게 계속하여 상대의 말을 제거해 나가다가 상대의 말이 두 개가 되면 이긴다.

고누의 놀이방법이나 형태를 보면 장기나 바둑과 그 맥이 닿아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린 아이 때부터 시작하여 청소년, 어른이 될 때 까지 지속적으로 했던 놀이이다. 이해 능력에 따라 여러 가지 고누 중에서 한 가지를 골라서 둘 수 있을 정도로 난이도가 다양할 뿐 만 아니라 놀이판, 말의 개수, 놀이 방법이 매우 다양하다. 또 한국 뿐 만 아니라 가까운 중국과 일본, 몽골, 인도 등지에서 도 많이 즐겼으며 전 세계적으로 유사한 놀이가 많다.
고누놀이와 제기차기
- 제기차기
제기차기는 구멍 뚫린 엽전이나 동전을 비단 또는 한지로 접어 싼 다음, 양끝을 구멍에 꿰고 그 한지의 끝을 여러 갈래로 찢어 술을 너풀거리게 한 제기를 발로 차며 즐기는 놀이이다. 주로 남자 어린아이들이 음력 정초를 전후하여 겨울에 즐겨 노는 놀이 의 하나로 최근에는 어린이들이 즐기는 놀이가 되었지만 옛날에는 어린이 뿐 아니라 청장년층에서도 많이 즐겼던 놀이이다. 고대 중국에서 무술(武術)을 연마하기 위해 행했던 축국(蹴鞠)에서 발전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축국은 국(鞠)을 차며 노는 놀이라는 뜻으로, 국은 가죽 주머니 속에 털 또는 헝겊과 같은 부드러운 물건을 채워서 만들었다고 한다.

놀이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한 사람씩 차기도 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서 차기도 한다. 한 번 치고 땅을 딛고, 또 차고 땅을 딛고 하는 방식, 두 발을 번갈아 가며 차는 방식, 땅을 딛지 않고 계속 차는 방식, 제기를 뒤로 차올리거나 발 등 바깥쪽으로 차는 방식, 한 번 차올린 제기를 입에 물었다가 다시 차고 다시 무는 방식, 제기를 자신의 키를 넘게 올려 차는 방식, 무릎으로 차는 방식, 차서 머리 위에 얹었다가 떨어뜨려 다시 차는 방식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한 명씩 하는 개인전의 방법이 있고 2~4명이 한 편을 이뤄 하는 단체전의 방법도 있다. 두 명 이상이 차는 방법은 한 번씩 마주 보고 차기, 일정한 개수를 한 명이 차고 다음 사람이 이어받아 치는 방법 등이 있다. 또한 앞의 여러 가지 방법 중에 어느 한 가지만을 미리 정해서 차기도 하고, '삼세가지'라 하여 위의 세 가지를 모두 차거나 해서 합계를 내어 승부를 짓기도 한다.

- 비석치기
비석치기는 손바닥만 한 납작한 돌을 세워 놓고 얼마쯤 떨어진 곳에서 돌을 던져 맞히거나 특정한 동작을 하여 쓰러뜨리는 놀이이다. 보통 두 편으로 나누어 한다. 두 편은 각각 나란히 선을 그은 뒤 그 선 위에 각각 마주 보고 선다. 두 편 사이의 거리는 2m에서 5m까지, 연령과 놀이 경험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정할 수 있다. 순서를 정해 시작하는데 상대편의 선 위에 세워 둔 비석을 맞추어 쓰러뜨리는 것을 1단계로 한다.

각 편이 각각 다섯 명이라면 다섯 개의 비석이 서 있는데 이것을 모두 맞추어야만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고, 다 맞추지 못하면 상대편에게 기회를 넘겨야 한다. 이때 세 사람은 맞추고 나머지 두 사람은 맞추지 못했다면 두 사람은 실격 처리되어 뒤로 물러나 있고, 앞서 맞춘 세 사람이 다시 남은 두 개를 맞춘다. 만약 남은 두 개를 모두 맞추면 실격된 같은 편 아이까지 다시 살아나 함께 2단계로 올라 갈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상대에게 기회를 넘긴다.

비석을 가지고 가다가 떨어뜨리거나 흘리는 경우, 발이나 몸으로 상대의 비석을 건드려도 모두 실격된다. 또 상대의 비석을 맞추기는 했는데 자신의 비석과 상대의 비석이 포개어 쓰러지면 '반비'라 하여 통과시켜 주지 않고 다시 던지도록 한다. 그 단계가 아무리 위 단계라고 하더라도 '반비'의 경우에는 상대 비석의 넓은 면이 아니라 좁은 면이 보이도록 세우고 출발선에서 던져 맞추어야 통과시켜 준다.

첫 번째 단계를 무사히 거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지역별로 조금씩 다르나, 많이 알려진 방식대로 하면 다음과 같다. 한 발 뛰어─두 발 뛰어─세 발 뛰어─한 발로 서서 맞추기, 발로 차서 맞추기─발등에 얹고 가서 맞추기─발목 사이에 끼고 가서 맞추기─무릎 사이에 끼고 가서 맞추기─엉덩이에 끼고 가서 떨어뜨려 맞추기─배 위에 얹고 가서 맞추기─어깨 위에 얹고 가서 맞추기─머리 위에 얹고 가서 맞추기─눈 감고 가서 맞추기 등의 순서에 따른다.

이 외에도 겨드랑이에 껴서 가서 떨어뜨리는 신문팔이, 손등 위에 얹고 뛰어 가서 맞추는 비행기뿐 아니라 뺨이나 등에 올리고 가서 떨어뜨려 맞추는 등 놀이 방법이 끝이 없을 정도이다.특징적인 것은 앞부분에 서서 던지거나 발로 차서 던지기 이후에는 신체의 아래에서부터 위의 순서로 올라가서 마무리한다는 점이다.

비석치기의 각 단계마다 재미있는 명칭이 있다. 발 등에 얹고 살금살금 간다고 도둑발, 발목에 낀 돌을 떨어뜨리지 않고 가려고 깡충깡충 뛴다고 토끼뜀, 오줌 싸서 옷이 젖은 것처럼 어기적어기적 간다고 오줌싸개, 배 위에 얹어 놓아 배가 나온 것 같은 모습이 사장 같다고 배사장, 어깨 위에 얹은 것이 계급장 같다고 훈장, 머리에 떡을 이고 팔러 다니는 것 같다고 떡장수 등이 그것으로 어린이의 재치를 엿볼 수 있다.
비석치기와 공기놀이
- 공기놀이
공기놀이, 널뛰기, 콩주머니놀이 등은 여자 아이들의 놀이이다. 공기놀이는 '공기'라고 불리는 놀잇감을 손으로 던져서 받고 쥐면서 노는 놀이로 그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윤덕희(1685~1766)의 공기놀이 그림이나 조선 헌종 때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우리나라 아이들이 둥근 돌알을 가지고 노는 놀이가 있어 '공기(供朞)'라 한다. 둥근 돌알을 공중에 던져 손바닥으로 받고 이미 받은 것을 솔발 형태로 만드는 것을 솔발공기라고 한다."라는 기록을 볼 때 그 유래가 제법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서양에도 이와 유사한 놀이가 있는데 '잭스(Jacks)' 또는 '너클본(Knucklebones)'이라 불린다. 놀잇감을 구하기 쉽고 놀이 방법이 비교적 간단하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여러 나라에서 놀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놀잇감인 공기는 다섯 개가 한 세트이지만 변형 규칙에 따라 일곱 개 이상의 공기를 가지고 놀 수도 있다. 예전에는 성인 엄지손톱 크기의 표면이 잘 마모된 돌 등을 주워서 고기로 이용하였으나 요즘에는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원통 모양의 플라스틱 공기를 사용하여 노는 것이 일반적이다. 플라스틱 통 안의 작은 쇠붙이를 이용하여 무게감을 조정하여 놀기도 한다.

이 놀이는 혼자서도 할 수 있으며, 개인별로 하거나 편을 나누어서 할 수도 있다. 편을 가르고 가위바위보 등으로 순서를 정한 다음에 목표점수인 '나이'를 정한다. 놀이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한 알 집기: 다섯 알을 바닥에 던져 흩어 둔 뒤에 한 알씩 집어 공중에 던진 뒤에 나머지 네 알을 차례대로 한 알씩 집어 손바닥 안에 받아서 쥔다. 다섯 알을 다 쥐면 두 알 집기로 넘어간다.
② 두 알 집기: 한 알을 공중에 던지고 바닥의 공깃돌을 두 알씩 집어 손에 쥔다.
③ 세 알 집기: 한 알을 공중에 던지고 바닥의 공깃돌 세 알을 집고, 다시 같은 방법으로 바닥에 남은 한 알을 손에 쥔다.
④ 네 알 잡기: 공깃돌 다섯 알을 모두 손에 쥐고 한 알을 공중에 던진다. 이 돌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네 알을 바닥에 놓고, 빠르게 손 안에 쥔다.
⑤ 꺾기: 한 알 집기에서 네 알 집기까지가 끝나면 손바닥에 공깃돌 다섯 알을 모두 얹고, 공기를 위로 살짝 던진 다음 재빨리 떨어지는 공깃돌을 손등에 올린다. 손등에 얹힌 공기 돌을 그대로 위로 띄운 다음 공중에서 손 안으로 낚아챈다. 이때 손바닥 안에 잡힌 공깃돌 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승부를 겨룬다. 이를 '나이 먹기'라고도 한다 .

실격이 되지 않으면 이렇게 한 차례가 돌고 난 뒤에 다시 한 알 집기로 돌아가서 계속한다. 공깃돌을 집을 때 다른 돌을 건드리거나, 바닥에 있는 돌은 손 안에 쥐었으나 위로 던져서 떨어지는 공깃돌을 놓치거나, 꺾기를 할 때 손등에 얹혀 있는 돌을 위로 띄워서 하나라도 잡지 못하면 실격이 되고 게임 기회가 다른 편으로 넘어간다. 공기놀이에서 점수는 일반적으로 다섯 번째 단계인 꺾기에서 손등 위에 몇 개의 공깃돌을 받아내는가에 따라 정해진다. 공기의 개수에 따라 1~5점을 얻게 되며, 점수 대신 나이로 숫자를 세기도 한다. 이렇게 점수를 쌓아 가며 놀이를 시작할 때 처음 정한 목표 점수에 먼저 다다르는 사람이 이기게 된다.

이 놀이는 여러 지방에 널리 퍼지고 많은 이들이 즐긴 놀이였다.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고 놀잇감을 구하기 쉬웠던 탓이다. 지금은 그 변형 규칙을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을 정도로 대표적인 실내 놀이의 하나이다.

2. 여성들의 놀이

여성들의 놀이는 겨루기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자족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대부분으로 여자 아이들의 놀이와 차이를 보이는 것은 놀이가 세시풍속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강강술래, 다리 밟기 등은 각각 추석과 대보름 때에 행해지던 놀이로 후술하기로 한다.

- 화전놀이
화전놀이는 남성들의 천렵에 대응될만한 여성들의 계절놀이로 삼월 삼짇날 산이나 들의 경치 좋은 곳을 찾아 화전을 해 먹으며 노는 꽃놀이이다. 화전놀이는 꽃놀이라는 점에서 화류(花柳)놀이라고도 하는 반면 회취(會聚) 또는 꽃달임이라고도 부른다. 회취는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 또는 가을에 농사일을 마치고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장만하여 강가나 들, 산 등지를 찾아가 음식을 나누며 노는 민속놀이이다. 오늘날의 소풍이나 야유회와 같은 성격이라 할 수 있다. 회취는 삼짇날 화전놀이처럼 꼭 정해진 날에 노는 것이 아니라 주로 바쁜 농사일이 한 고비 넘기는 단오 무렵 또는 세벌 논매기를 끝낸 백중 무렵에 하루 날을 잡아 야외에서 즐겼다. 꽃달임이란 말은 화전(花煎)을 직역한 말로 꽃을 달인다(煎)는 뜻이라 할 수 있다.

지역에 따라서 진달래꽃을 따서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지저 먹으며 즐기기도 하며, 이 전이 곧 화전이며 이것의 이름을 따서 화전놀이라 부르게 되었다. 화전놀이는 화류놀이라고도 하지만 후대에 이르러서는 화전놀이라는 말로 정착되었다. 특히 한반도 경상도 지역의 여성들은 화전놀이 때 화전을 만들기도 하지만 내방가사를 지으며 놀기도 하고, 장구와 같은 악기를 두드리며 한바탕 흐드러지게 놀며 회포를 풀었다고 전해진다.

화전놀이를 할 때 부르는 '화전가(花煎歌)'에는 다양한 주제의 노래가 들어 있다. 화전가는 내방가사의 대표적인 형태의 하나로 이 노래를 통해 화전놀이의 모양을 짐작할 수 있다. 화전놀이가 끝날 때에 놀이에 그치지 않고 그날의 감회를 써서 돌려보는 풍속이 있다. 이는 여성 자신의 특유한 감성을 잘 표현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규방에서 나와 해방감을 맛보는 내용의 가사는 조선시대 양반 여성들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화전가와 화전놀이가 만난 거은 19세기 초 이후로 보인다. 이 시기에 이르러 여성들은 화전놀이의 과정과 소회를 적은 전형적인 화전가를 즐기기 시작한다. '화전가'의 창작과 음영이 화전놀이의 주요한 내용으로 자리잡음으로써 여성들의 화전놀이는 그 이전 시기 여성들의 화전놀이와는 물론 남성들의 천렵과도 다른 면모를 보여주게 되었다.

이 밖에도 삼짇날 파릇파릇한 풀을 밟으며 거니는 답청(踏靑) 놀이가 있으며, 함경도에서는 여성들이 이 놀이를 즐겼다. 북쪽은 봄이 짧고 강물이 풀리자마자 훈풍이 일고 진달래가 진다. 그러면 점차 초여름 기운이 돌고 꽃들이 일시에 피고 녹음이 우거지는데 이러한 계절의 특성으로 이곳에서는 화전놀이대신 답청놀이가 성행했다. 하지만 계절놀이이면서 여성놀이라는 점에서 이들 놀이는 상관성을 갖는다.

3. 남성들의 놀이

남성들의 경우 비교적 생업으로부터 자유로운 농한기에 화투, 투전, 골패, 마작 등의 놀이를 벌였는데 이들 놀이는 한결같이 내기의 성격이 짙은 것이었다. 이 밖에도 수렵과 천렵 등이 있었지만 이런 활동은 노동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하였다.

- 투전
여러 가지 그림이나 문자 따위를 넣어 끗수를 표시한 종잇조각을 가지고 노는 놀이인 투전은 남성들의 전통적인 실내놀이 중 하나이다. 각종 문양·문자가 표시된 패를 뽑아 패의 끗수로 승부를 겨루는 놀이로 노름의 성격이 강하다. 투전은 두꺼운 종이에 기름을 먹여 만든다. 길이는 10~20cm 사이이며 너비는 손가락만 하다. 한 면에 동물 문양 및 문자를 적어서 끗수를 표시하였다. 25장·40장·50장·60장·80장이 한 벌이며, 일반적으로 40장 한 벌을 가장 많이 사용하였다. 투전은 두꺼운 종이에 기름을 먹여 만든다. 길이는 10~20cm 사이이며 너비는 손가락만 하다. 한 면에 동물 문양 및 문자를 적어서 끗수를 표시하였다. 25장·40장·50장·60장·80장이 한 벌이며, 일반적으로 40장 한 벌을 가장 많이 사용하였다.

투전은 조선시대 영조(1724~1776) 초기부터 크게 유행하여 사람들에게 큰 폐해를 입혔으며, 관아에서 아무리 단속하여도 효과가 없었다. 항간의 서민들뿐만 아니라 사대부의 자제들도 투전에 빠져 재산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선수가 판꾼 다섯 사람에게 한 장씩 떼어 모두 다섯 장씩 나누어 주며, 판꾼들은 각각 세장을 모아서 10·20·30을 만들어 짓고 나머지 두 장으로 이루어지는 수에 따라 승부를 정한다. 세 장을 모아도 지을 수 없는 사람은 실격이며, 두 장의 숫자가 같으면 이를 '땡'이라 한다. 이 중 '장땡(10의 숫자가 두 장인 경우)'이 가장 높으며, 9땡, 8땡 순서로 낮아진다. 땡이 아닌 경우 두 장을 합한 것의 한자리 수가 9가 되면 '갑오'라 하여 가장 높고, 9·8·7·6 등의 차례로 내려간다. 그리고 갑오가 되는 수 가운데 1과 8은 '일팔', 2와 7은 '비칠'이라 하고 5가 되는 수 중에는 1과 4는 '비사'라 부른다. 두 장을 더한 수가 10처럼 한자리 수의 끝이 되는 경우에는 '무대'라고 하여 제일 낮은 끝수로 친다.

투전의 놀이 방법은 매우 다양하나 공통적으로는 끗수를 맞춰서 그 크기에 따라 승패를 결정한다. '우등뽑기'는 네다섯 사람이 한 조로 판을 돌리고 한 장씩 더 뽑아서 우열을 다투는 놀이이다. 투전의 도박성이 확대됨에 따라 조선사회에서는 집, 토지, 재산을 팔아야 하는 큰 폐해가 생겼다. 또한 투전꾼들이 전문적인 도박단을 형성하여 다니기도 하였다. 투전이 이처럼 확산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먼저 화폐의 통용과 활성화를 들 수 있다.

조선 후기의 풍속화를 보면 으레 투전판에는 동전 묶음이 놓여 있다. 화폐 경제의 발달은 투기성을 높일 수 있었고 물물교환에 비하여 즉각적으로 교환되는 동전은 심리적으로 강한 자극과 흥분을 주었다. 또한 상업이 활성화되고 장사가 발달하는 것도 투전 확산의 배경이 된다. 투전은 다양한 민속문화의 갈래와도 연결이 되는데, 탈춤에 등장하는 투전판, 농악의 도둑잡이 굿, 숫자풀이, 사시랭이 소리 등에 투전이 등장하거나 활용되고 있다. 이것은 투전이 미친 사회적 파장이 매우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투전패와 두전도

4. 마을 전체의 놀이(대동놀이)

어른들의 단체 눌이는 사실상 마을 전체의 놀이라고 할 수 있다. 풍농을 기원하는 제의적 성격을 지닌 놀이는 이러한 성격이 더 짙다. 예를 들어 여성들이 하는 다리밟기나 강강술래, 남성들이 하는 고싸움 놀이 등은 마치 남녀 어른들에게 한정된 놀이 같으나 그 참여의 범위 그리고 놀이의 기능으로 보아 마을 전체의 놀이나 다름없었다.

- 줄다리기
줄다리기는 많은 사람들이 두 편으로 나누어 줄을 마주 잡아 당겨 승부를 겨루는 놀이이다. 줄다리기는 남녀노소의 구분 없이 마을 사람 전체가 참여하는 가장 대표적인 놀이이다. 줄다리기는 지역주민들 사이에 겨루기를 통해서 공동체 의식을 강화한다. 전통사회에서 대동놀이는 마을과 고을 축제의 중심적 연행 가운데 하나였고, 특히 줄다리기는 남녀노소가 함께 참여한다는 점에서 최고의 대동(大同)을 구현하는 연행이었다.

줄다리기는 고을과 마을을 배경으로 전승되었다. 고을의 읍치(邑治)를 중심으로 전승된 '고을형' 줄다리기는 평시에는 읍치의 구성원들만 참여하여 연행하였다. 그런데 풍년이 들어 경축할 일이 생기거나 흉년이나 질병 등 공동체 차원에서 대처해야 할 위기가 닥치게 되면 고을 사람들 대다수가 참여하는 초대형의 줄다리기가 되었다. 읍치의 구성원들만 참여하는 줄다리기를 '닫힌 고을형' 줄다리기라고 한다면 후자의 줄다리기는 '열린 고을형' 줄다리기라고 할 수 있다.

마을을 배경으로 전승되던 '마을형' 줄다리기 역시 '고을형'과 동일한 양상을 보여준다. 평상시에는 마을사람만 참여하여 줄을 당기다가 여건이 되면 인근 마을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대규모의 줄다리기를 행하였다. 전자를 '닫힌 마을형'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열린 마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줄다리기의 연행시기는 대보름, 단오, 추석 등으로 다양하였다. 줄다리기의 연행공간은 기본적으로 줄을 당기는데 불편함이 없는 넓고 긴 공간이면 되는데, 줄의 규모와 각 지역의 지리적 여건에 맞게 연행의 공간을 결정하였다. 내륙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넓은 논밭이나 큰 길에서 줄을 당기고 강을 끼고 있는 지역에서는 강변을 공터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해안 지역에서는 해변의 백사장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줄다리기의 편은 대개 두 가지 방식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성별에 따라 남성과 여성으로 편을 가르는 것이고 이는 주로 호남지역의 줄다리기에서 통용된다. 한편 지역별로 편을 가르는 경우에는 동/서, 남/북, 상/하 등의 기준에 따라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줄다리기와 마을 제사는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호남 지역의 줄다리기는 마을 단위로 진행되는데, 당산제를 거행하는 당일 제사에 앞서서 연행된다. 다른 지역에서는 제사를 지낸 뒤에 연행되기도 한다.

Infokorea 2020
<인포코리아>(Infokorea)는 외국의 교과서 개발자와 교사 등 한국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을 위해 개발된 한국 소개 잡지입니다. 외국의 교과서 저자나 편집자들이 교과서 제작에 참고할 수 있고, 교사들이 수업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한국 관련 최신 정보를 제공합니다. 또한, 한국의 문화, 사회, 역사, 경제 관련 주제를 특집으로 제공합니다. 2020년 호의 주제는 '한국의 전통놀이'입니다.

발행 |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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