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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커스

조선시대 왕의 하루일과와 궁중생활 - 1

왕의 취침과 기상

동월도
『세종실록』에 의하면 세종은 재위 중 매일 새벽 3시 전후에 기상하였고 해가 뜨는 평명(平明)에는 조회를 받았다. 이어서 시사(視事), 윤대(輪對), 경연(經筵)을 수행하였는데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새벽 3시 전후에 기상한 세종의 하루 일과는 크게 보아 일출 후의 조회와 시사, 오전의 윤대, 오후의 경연 그리고 밤의 사생활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같은 하루 일과는 세종 개인만의 일과가 아니라 조선시대 왕의 일상적인 일과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왕의 하루 일과가 아침, 오전, 오후, 밤의 네 단계로 구분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왕의 사시(四時) 즉 네 때라고 하였는데, 아침에는 신료들로부터 정치를 듣고, 오전에는 왕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만나며, 오후에는 조정의 법령을 검토하고, 밤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것이 왕의 하루 일과를 구성하는 네 때였다.

왕의 하루 일과를 구성하는 네 때는 궁궐의 공간 구성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아침, 오전, 오후의 세 때에 왕은 정전이나 편전에 머물면서 신료들과 더불어 공적인 국사를 논의하고 처리하였다. 반면 밤의 한 때에 왕은 침전이나 중전 또는 후궁에 머물면서 사적인 가정생활을 영위하였다. 그러므로 왕이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에 기상하는 장소는 기본적으로 침전이나 중전 또는 후궁이었다.

공식적으로 왕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인경(人定) 이후였다. 인경은 밤 10시쯤 통행금지를 알리기 위해 치는 28번의 종소리였다. 인경의 타종은 대궐의 물시계가 비치된 보루각에서 시작되어 종루, 남대문, 동대문으로 이어졌다. 도성의 4대문은 인경 소리와 함께 닫혔다. 인경을 28번 쳐서 통행금지를 알리는 일을 인정(人定)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하늘을 지키는 28개의 별자리를 상징한 것으로 밤에 평화를 지켜 달라는 의미였다. 인정 후에는 딱딱이를 든 순라군들이 순찰을 돌았다.

파루(罷漏)는 통행금지의 해제를 알리는 소리로 33번을 쳤는데 새벽 4시쯤 쳤다. 파루는 인경 때와 마찬가지로 궁궐의 물시계가 비치된 보루각에서 시작되어 종루, 남대문, 동대문으로 이어졌다. 본래 인정은 종으로, 파루는 북으로 알리는 것이 원칙이었다. 밤과 낮이 음양으로 다르듯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을 알리기 위한 인정과 파루도 서로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은 쇠로 된 종은 음으로서 밤과 잠을 상징하였고, 나무와 가죽으로 된 북은 양으로서 낮과 활동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밤에 편안한 잠을 자기 위한 인정은 종으로 쳐야 하고, 새벽에 잠을 깨우기 위한 파루는 북으로 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왕의 기상 시간이 파루를 기준으로 하므로 왕이 잠을 자는 침전이나 중전 또는 후궁 주변에 물시계를 비치한 보루각을 설치하여 시간을 측정하게 했다. 경복궁의 경우 왕의 침전인 강녕전 서쪽에 물시계가 비치된 흠경각이 있었다. 세종 때에는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가 설치된 보루각이 경회루 남쪽에 건설되기도 하였다. 경복궁 이외 궁궐에서도 왕의 침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물시계가 비치된 보루각이 설치되어 있었다. 보루각에서 측정된 시간은 궁궐 요소요소에 배치된 전루군(傳漏軍) 즉 시간을 전달하는 군사들을 통해 통지되었다.

왕이 밤에 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는 침실은 온돌방이었기에 침구는 침대가 아니라 이불과 베개였다. 침전 주변에는 왕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사람과 시설이 있었다. 왕의 침실 밖에서는 지밀상궁들이 왕의 밤을 지켰고, 식사와 세숫물, 옷 등을 담당하는 대전 차비(大殿差備)들은 침전 근처에서 항상 근무하면서 왕의 새벽을 준비하였다.

파루 후 왕이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지밀상궁들은 이부자리를 정리하였고, 식사를 담당한 수라간의 요리사들은 음식을 만들었으며, 세숫물을 대령하는 시녀들은 물을 준비했다. 환관들도 일어나 왕의 명령을 기다렸다.

왕의 새벽은 지존의 품격에 맞는 준비를 하는 시간이었다. 자연의 인간으로 돌아가 잠들었던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수라를 들고,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시종들의 수행을 받으며 왕의 위엄과 권외를 갖춰 나갔다.
경복궁 지도
조선시대 왕의 침실은 지밀(至密)이라 불렸다. '지밀'이란 궁중에서 가장 지엄하고 중요하여 말 한마디 새나가지 못하는 곳이란 의미였다. 왕은 이런 지밀에서 왕비와 더불어 생활한 것이 아니라 궁녀들과 더불어 생활했다. 지밀에서 근무하는 궁녀들이 이른바 지밀궁녀였다.

정도전은 조선왕조의 설계자로서 건국이념, 국가노선, 국가 제도 등을 확립한 인물이었다. 그는 태조 이성계의 명령을 받아 경복궁 각 건물의 이름을 지을 때, 침실이 소재한 건물 즉 침전(寢殿)의 이름을 강녕전(康寧殿)이라고 하였다. 정도전에 의하면 강녕이란 5복 중의 하나로서, 임금이 마음을 바르게 하여 덕을 닦아 황극(皇極)을 세우면 몸과 마음이 강녕해지는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나라와 천하가 강녕해지는 복을 받는다고 하였다. 결국 정도전이 경복궁의 침전을 강녕전이라 이름 붙인 이유는 '황극'이라는 말에 압축되어 있었다.

정도전이 언급한 황극은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태극과 같은 뜻이었다. 동양철학의 태극이란 우주 만물이 생성되기 이전의 근본을 의미했다. 음과 양 또는 상하좌우로 나뉘기 이전의 근원이 태극이고 황극이었다. 즉 식욕, 색욕, 권력욕 등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발생하기 이전의 중용 상태가 황극이었다. 황극은 중용 상태이므로 좌도 없고 우도 없으며 위아래도 없었다. 온갖 분열과 대립이 파생되기 이전, 온갖 욕망이 들끓어 오르기 이전의 중용이 황극이며 태극이었다. 요컨대 정도전이 경복궁의 침전을 강녕전이라 이름 붙인 이유는 왕이 밤에 조용히 황극을 닦으며 식욕, 색욕, 권력욕 등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잠재워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해야 왕은 하늘이 내리는 오복을 받을 수 있다고 설득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물론 왕의 밤 생활이 식욕, 색욕, 권력욕으로 휩쓸릴 경우 오복이 아니라 천벌이 내린다는 경고도 숨어 있었다.

정도전은 침전의 위치와 공간 구조도 황극을 기준으로 하였다. 즉 경복궁의 침전 강녕전을 정중앙에 위치시켰던 것이다. 강녕전 전면에 사정전과 근정전, 후면에 후원 그리고 좌측에 연생전, 우측에 경성전 등을 둔 것이다. 강녕전 후면 지역에는 세종대에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이 세워졌고, 이로서 강녕전은 더 확실하게 경복구의 정중앙이 되었다. 이처럼 경복궁의 정중앙에 침전을 배치한 이유는 침전이 바로 지상의 황극임을 상징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에서 우주의 황극이 음양과 상하좌우로 분열되기 이전의 근원이듯이, 지상의 황극인 왕의 침전도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도출되었다. 즉 왕의 침전은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왕은 궁궐의 정중앙에 위치한 침전에서 홀로 거처하며 하늘의 황극을 닦아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실제로 조선시대 왕의 침전은 왕비와 함께 쓰는 것이 아니라 왕 혼자만 쓰는 공간이었다.

왕의 침실은 궁궐에서의 위치뿐 아니라 침전의 공간 구성 자체도 황극을 상징하였다. 왕의 침전은 좌우의 온돌방과 중앙의 대청으로 구성되었는데, 좌우의 온돌방이 바로 침실이었다. 이 침실은 기본적으로 우물 정(井)자 형태였는데, 우물 정 자가 황극과 관련이 있었다. 즉 우물 정 자는 '井'의 형태로서 중앙의 방 하나와 이를 둘러싼 8개의 방으로 구성되었다. 중앙의 방은 황극이며 주변 8개의 방은 8괘를 상징하였다. 당연히 왕이 잠을 자는 방은 황극을 상징하는 중앙의 방이었다.

이 같은 침실 즉 지밀의 구조 및 이념은 경복궁의 강녕전만이 아니라 창덕궁의 대조전, 덕수궁의 함녕전 등 다른 궁궐의 지밀에서도 동일하였다. 이처럼 조선의 왕은 지밀에서 홀로 황극을 닦고 그것을 편전과 정전에서 정치적으로 구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했다.

Infokorea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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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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