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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시위와 코로나, 칠레 학생들의 화면 속 도전

Julia Rodriguez Castillo
민원정
칠레 가톨릭대학교
2019년 10월 18일,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중심을 관통하는 바케다노 역에서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에 반발해 일어난 중고생들의 시위가 한국 언론에 보도되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이었지만, 2020년이 저물도록 계속되고 있는 시위의 이면에는 오랜 계급사회의 묵은 분노가 있다. 적어도 필자가 칠레에서 일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단 한 번도 학사일정을 어긴 적 없던 칠레가톨릭대학교도 시위가 시작된 이후 정상적인 수업이 어려웠다. 칠레가톨릭대학교 산호아킨 캠퍼스 앞 지하철역의 개찰구는 시위대에 의해 파괴되어 몇 달 동안 폐쇄되었다. 결국 수업플랫폼을 통한 과제 제출과 시험으로 학기를 마무리했다. 한동안 시위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던 터라 학교는 2020년도에는 어떠한 상황에도 학사 일정이 차질을 빚지 않도록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수업을 준비했다.

2020년 3월.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수강생들과 인사를 나누며 시위로 교통편이 불편해지거나 학교가 문을 닫을 경우 비대면 수업이 이루어질 것이라 공지했다. 그러나 학기가 시작하고 두 번째 주부터, 시위가 아닌 코로나 19로 인해 1학기 전체 수업은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온라인 비대면 수업이 시작되었다. 빈부격차가 심한 칠레의 경우 (OECD 국가 중 최고) 인터넷 연결이 여의치 않아 화면에 얼굴을 보일 수 없는 학생들이 많다. 상대적으로 나은 인터넷 환경에 사는 학생들에게만 얼굴을 보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가상 화면, 마이크, 링 조명 등에 대해 고민하는 동료 교수들도 없었다. 모두가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한 학기 내내 휴대폰으로만 수업을 들은 학생들도 있고, 단과대에서 빌려준 노트북에 의지한 학생들도 여럿이었다. 그나마도 3월 중순부터 산티아고 시내 전체가 락다운에 들어가 학교에 노트북을 받으러 가지 못한 학생들도 있었다. 인터넷회사도 재택근무 중이라 제대로 정비를 하지 못하고 사용자의 수는 폭증하니 학기가 지나며 인터넷 속도는 더욱더 느려졌다. 수업이 있는 날에 비라도 오면 행여나 전기가 나가거나 인터넷이 끊길까 마음을 졸였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했다. 1학기 수업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 학교 도서관에서는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는 책을 점차로 늘려 갔다. 수업 자료는 최대한 온라인으로 구할 수 있는 자료를 활용해야 했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SNS를 통한 학생들과의 가능한 연결 창구를 만들었다. 시위와 코로나 19로 지쳐 있는 학생들의 참여를 북돋우기 위해 수업 시작 10분 전에 화면을 열어 케이팝부터 판소리까지 다양한 우리 노래를 들려주었다. 노래를 듣기 위해 미리 접속하는 학생들의 수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 시간에는 늘 학생들이 조를 나누어 발표하고 학기 말에는 한반도가 통일되었다는 가정하에 학생들이 토론하는 '후통일 시뮬레이션을 한다. 학생들은 수업 첫 주에 얼굴을 익혔을 뿐이고 락다운에 들어간 도시에서 서로 만나기도 어려웠으나 발표하는 날 인터넷 접속이 어려울 경우를 대비해 미리 녹화 비디오를 준비하는 등 훌륭하게 조별 발표를 했다. 후통일 시뮬레이션이 있던 학기 마지막 수업 시간에는 기적적으로 학생 전원이 접속했다. 한국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한국만큼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칠레에서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학생들은 6자 회담을 모방해 남한, 북한, 러시아, 미국, 일본, 중국으로 나뉘어 토의했다. 조별로 각자 발표할 시간까지 미리 의논해 완벽한 토의를 해냈다. 다들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며 다독였다.

그동안 칠레가톨릭대학교에서는 다양한 한국학 관련 활동이 이어져 왔다. 2006년 한국학 수업이 개설된 이후, 2007년부터 2016년, 그리고 2018년에 모두 11회의 학부생 대상 한국학논문대회, 2008년부터 2016년, 그리고 2018년에 모두 10회의 국제한국학학술대회가 열렸다. 2011년 제4회 국제한국학학술대회부터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 수업을 수강한 학생 중 5~7명을 뽑아 Junior Panel을 구성해 매년 다양한 주제로 후통일 시뮬레이션을 토의했다. 한국학논문대회 수상작은 4년마다 모아 두 권의 책으로 나왔고, 학술대회 발표문을 추려 편집한 책도 2년 간격으로 모두 다섯 권의 책이 출판되었다.

코로나 19로 락다운이 반복되는 와중에도 시위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올해 10월 헌법 개정안 찬반 투표가 통과되었으나, 시민들은 새로운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시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국제한국학학술대회의 여섯 번째 책도 출판을 미뤄야만 했다. 2020년 2학기 수업은 전면 비대면으로 진행되었고, 적어도 2021년 1학기에도 비대면 수업이 확정되었다. 칠레 내의 모든 대학은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온전히 온라인으로 보내고 온라인으로 대학 신입생이 되는 첫 세대를 맞이하게 된다.

시위와 코로나로 칠레에서의 한국학 관련 활동도 변화를 꾀해야만 할 상황에 처했다. 인구 대비 누적 확진자 수가 워낙 많다 보니 (2020년 12월 19일 기준 583,354명. 칠레 인구는 약 1,900만명) 한국학 수업을 듣는 학생 중 본인이나 가족들 가운데 확진자가 나오는 경우도 흔한 일이 되었다. 1년 이상 이어진 시위와 코로나로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며 학기 중에 휴학이나 퇴학을 하는 학생들의 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칠레를 비롯한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2020년도 1학기 한국의 역사와 문화, 2학기 한·중남미 비교문화 수업은 각각 50명의 학생이 수강했다. 그리고 모두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 코로나 19가 지나간 후에도 어려운 상황은 제법 오래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황에 맞는 한국학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칠레에서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칠레 가톨릭대학교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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