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S Home | CEFIA Home |  영문홈페이지

전문가 칼럼

유럽의 한국어 교육과 연구의 현황과 전망
- 헬싱키 대학교를 중심으로 -

김정영
김정영
핀란드 헬싱키대학교, 교수
유럽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지난 10년 동안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이는 한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에 더불어 한류에 힘입은 바 크다. 과거 한국어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핀란드의 저명한 언어학자 구스타프 존 람스테트(G. J. Ramstedt)는 1939년 이미 <한국어 문법서(A Korean Grammar)> 영문판을 출간했다. 람스테트는 조국 핀란드의 인종집단 기원을 조사하기 위한 차원에서 한국어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1934년부터 헬싱키 대학교에서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람스테트가 한국어에 보인 학문적 관심은 유럽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된 이유에 대한 질문과 더불어 유럽 내 한국어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평가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현재 다수 대학에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이 확대되고 있는 현상을 한류 팬들에 대한 유인책으로서 이해할 수도 있으나, 이보다는 언어를 통한 '한국학' 교육의 유효성을 입증하는 근거가 더 많다는 시각에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저자는 인터넷상에서 접할 수 있는 매력적인 대중문화를 매개로 유럽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겸허한 은자의 왕국'을 둘러싼 베일을 벗기고자 유럽의 대학에서 한국을 가르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 대중문화의 전파는 유럽이 현대의 한국에 눈 뜨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고유의 문자 체계인 한글로 인하여 한국에 대한 관심은 한층 더 배가되었다. 한국의 역사, 전통문화, 기적적인 산업 발달 및 국제 정치 등 한국을 둘러싼 여러 측면은 특히 유럽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어는 그 자체로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대표한다. 따라서 한국어는 한국학을 발전시키는 토대로써 기능해왔다. 한국어 연구에 대한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증가하고 있는 오늘날, 한국학 연구의 구체적인 분파로서 한국어 연구를 진흥하는 것이 중요하다.

1. 헬싱키 대학교의 한국어

1-1. 구스타프 욘 람스테트 (Gustav John Ramstedt)
헬싱키 대학교는 북유럽의 동쪽 귀퉁이에 자리하여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핀란드의 수도 중심부에 있다. 스웨덴 제국의 통치하에 있던 시절인 1640년에 당시 수도였던 투르쿠에 투르쿠 왕립 아카데미라는 명칭으로 설립되었으나 1828년에 발생한 투르쿠 대화재로 인하여 헬싱키로 이전하였다. 핀란드가 제정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다가 1917년에 독립을 선포하면서 헬싱키 대학교로 개명하였으며,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국립대학교이다. 비록 독립 국가로서의 역사는 짧지만, 신생국 핀란드는 헬싱키 대학교 교수였던 구스타프 욘 람스테트(1873-1950)를 1920년부터 1929년까지 일본에 초대 공사로 파견하였다. 람스테트는 근무지인 동경에서 조선인 유학생 류진걸로부터 한국어를 배웠다.

그의 이러한 학구열이 토대가 되어 헬싱키대 교수직 복귀 후 1934년부터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본교 한국어/학의 모체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한국어 연구에 대한 열정은 1939년 A Korean Grammar라는 세계 최초의 영문 한국어 문법책을 출판하기에 이른다. 오늘날에도 핀란드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언어학자 중 한 명인 람스테트는 당시 헬싱키 대학교의 단과 대학 격인 '아시아와 아프리카 언어 및 문화 교육원 (Aasian ja Afrikan kielten ja kulttuurien laitos: AAKKL)'에 알타이어학과 교수로 소속되어 있었는데 위에 언급한 문법책 외에도 'Remarks on the Korean language' (1928)와 Studies on Korean Etymology (1949) 등을 출판하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어 연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이러한 람스테트 교수의 업적은 훗날 대한민국 정부의 인정을 받아 1982년에 국민훈장인 모란장을 받게 되었다.

1-2. 한국어 교수직
람스테트 교수가 세상을 떠난 뒤 한국어 강의는 핀란드에서 잠시 끊어지는 듯했으나 1967년에 핀란드로 건너와 헬싱키 대학교에서 핀-우그르학을 전공한 고송무 선생에 의해 부활하였다. '소련 중앙아시아의 한인들'이란 제목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87년부터 1993년 카자흐스탄에서 교통사고로 별세하기까지 한국어와 한국 관련 역사 과목을 가르치면서 동아시아학을 담당한 교수로 재직하였다. 고송무 교수가 재직하던 당시에도 레이또넨 (Leitonen)과 레혼꼬스끼 (Lehonkoski) 등 핀란드인들이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고송무 교수의 불의의 사고 이후 한동안 한국어 강의가 잠시 침체하였으나 1999년부터 2001년까지 2년간 부산 외국어 대학교의 송향근 교수가 임시직 한국어 전임으로 임용되어 다시 활성화되었다. 송향근 교수가 부임 된 자리는 알타이어학 교수의 직책으로 동아시아학을 총괄하고 있던 유하 얀후넨 (Juha Janhunen)의 노력으로 설치되었다. 한국어와 한국 역사에 관심이 지대한 학자인지라 중국어 및 일본어와 함께 구색을 갖춰 학과를 운영하기 위해 애쓴 결실이었다. 람스테트의 자리를 계승한 유하 얀후넨 교수는 고대 한국어는 물론 한국 역사에도 조예가 깊어 2000년도에 핀란드어 최초로 한국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학술 도서 Korea, Kolme ovea tiikerin valtakuntaan (한국, 호랑이 왕국으로 들어가는 세 개의 문)을 따우노-올라비 후오따리 (Tauno-Olavi Huotari)와 일마리 베스따리넨 (Ilmari Vestarinen)과 함께 출간하기도 하였다. 송향근 교수가 떠난 직후, 2001년 가을 학기부터 필자가 임용되어 현재 정년직으로 재직 중이다.

1-3. 대학교 구조조정과 한국어 프로그램의 확대
2001년 이후 EU통합의 여파와 대학교의 재정난으로 인하여 AAKKL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AAKKL의 폐과이다. 람스테트가 1917년도에 알타이어학 교수로 임명된 바가 증명하듯이 AAKKL은 오랜 전통을 유지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핀란드가 경기 불황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100% 정부의 예산에 의지하는 헬싱키 대학교는 예산축소의 일환으로 구조조정을 통해 소규모의 학과를 통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2010년 '세계문화 학과 (Maailman kultturien laitos)'를 만들어 AAKKL을 편입시켰다. 세계문화 학과는 AAKKL, 고전학 (Department of Classical Philology), 지역학 및 문화학을 위한 렌발 학원 (Renvall Institute for Area and Cultural Studies), 그리고 비교 종교학 (Department of Comparative Religion)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계문화 학과 안의 AAKKL은 상위의 좀 더 광범위한 단위로 편입되어 예산 집행에만 변화가 생겼을 뿐 다른 특이할 만한 변화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 악화되는 국내의 불황으로 인하여 2017년 연말을 맞이해 세계문화 학과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이는 인문대학 전반에 걸쳐 가해진 개편 때문이었다. 인문대학 (Faculty of Arts)은 러시아학과 동유럽학을 위한 알렉산더 학원(Aleksanteri Institute for Russian and Eastern European Studies); 문화 (Cultures); 디지털 인문학 (Digital Humanities); 핀란드어학, 핀-우그르학 및 스칸이나비아학 (Finnish, Finno-Ugrian and Scandinavian Studies); 외국어 (Languages); 철학, 역사, 예술 (Philosophy, History and Art)이라는 명칭으로 분류된 여섯 개의 학부 단위로 개편되었다. 이처럼 구조조정에 따른 혁신적인 개편이 단행됨에 따라 AAKKL은 그동안 보존해 오던 형태를 더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이에 소속되어 있던 어학 전공 교수들은 대부분 외국어 학부 (Department of Languages)로 이동하였다. 이는 다시 말해 이전에는 한국학에 포함되었던 어학 과정이 '한국어학' 프로그램으로 독립되어 분리되었다는 것과 동시에 학생들이 취득하게 될 학위명이 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재정 긴축을 위해 통합을 도모한 구조조정이 아시아학의 경우에는 역설적으로 어학과 문화 간의 분리를 초래하며 어학 프로그램이 오히려 확대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처럼 구조조정 중에 아시아학이 겪은 뜻밖의 변화가 한국어 과정에 미친 영향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학이 AAKKL에서는 동아시아학, 그리고 세계문화 학과에서는 아시아학 학위 과정의 하위 전문 분야 중 하나로 취급되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정확히 '한국학'으로 분류되는 과목을 수강하지 못하더라도 유사한 과목으로 학점을 채우면 한국어를 수강한 학점이 중심이 되어 (동)아시아학 학사 또는 석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사실상 한국학 전공이라고 함은 한국어를 전공처럼 집중적으로 공부하며 (동)아시아학 과목을 몇 개 수강하고, 원한다면 한국으로 교환학생으로 파견되어 한국어를 향상시킨 다음 (동)아시아학 학위로 졸업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한국어는 일반 언어학과 번역학을 비롯해 24개에 달하는 외국어가 상존하는 외국어 학부에 독립된 학위 프로그램으로 포함되었다. 이처럼 그 지위가 격상됨에 따라 헬싱키 대학교 당국으로부터 한국 국제교류재단 한국어 객원교수 초청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

1-4. 한국어의 중등교육 현황과 전망
한국어 전공 학생들의 졸업 후 진로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점은 중등교육에 종사하고자 하는 어학 교사 지망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핀란드는 2016년에 교육부가 정하는 중등교육 외국어 교과과정 과목으로 일본어와 중국어를 포함했다. 한국어는 아직 포함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초중등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핀란드의 초중등 교원은 두 과목 이상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이 보편적이다. 특히 한국어는 장차 언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상대적으로 희소성이 있어 미개척 분야로 여겨지기 때문에 꽤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현재 헬싱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고등학교는 꿀로사아리 고등학교 (Kulosaari yhteiskoulu)이다.

2. 유럽 지역의 한국어 교육 현황

핀란드는 그나마 어학을 중시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고 그 성향이 대학교 정책에 반영되는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런던 대학교 SOAS와 옥스퍼드 대학교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대학교에서는 한국어 과정이 학문 탐구의 한 줄기라기보다는 (동)아시아학의 일부인 한국학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지속해 오고 있다. 이는 한동안 전공을 불문하고 단지 원어민이라는 자격으로 유학생이나 현지 교민을 채용하여 한국어 교원으로 활용해 온 것이 그 원인이 아닐까 짐작된다. 최근 들어 한국어 교육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 어학 전공자들이 채용되고 있기는 하나 오랫동안 처지가 이러하다 보니 여전히 다수의 한국어 교육자들이 계약직에 머물러 있고 과중한 수업 시수로 인하여 연구를 활발하게 병행하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럽으로 번져오는 한류 덕분에 한국어를 배우거나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이 급속하게 늘어남에 따라 한국어 교원의 학문적 자질과 전문성이 요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유럽 대학교들은 극심한 재정난과 그 인기가 얼마 가지 않아 수그러들지 모른다는 노파심에 학자급 교원을 기꺼이 충원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과거와 달리 한국어가 단순히 한국학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써만이 아니라 한국학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을 확고히 해 나가야 할 때라고 여겨진다. 그 이유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에 수록된 스웨덴 학생 (일본 리츠메이칸 아시아 태평양 대학에 파견된 스톡홀름 경제대 학생)의 말을 아래 빌려 적고자 한다.

"세계를 다녀보니까, 가장 중요한 것이 언어더군요.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 그 사회에 들어가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유럽을 먼저 체험하고 나서 미국을 경험했고 그다음에는 중국과 일본을 차례로 경험해 보았어요. 중국에서도 그랬지만 이번에 일본에서 더욱 절실하게 느낀 것은 그들의 정서와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언어를 통해 체험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날씨가 좋을 때,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가 우승했을 때, 그리고 가족의 경조사가 있을 때 그들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알지 못하면 그 사회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전까지만 해도 언어를 단순히 소통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했는데, 그뿐만이 아니라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란 걸 깨닫게 되었죠." (최인혁:118-119쪽)

얼핏 보면, 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울 필요가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언어가 그 나라의 문화를 드러내기 때문에 한 나라를 이해하려면 그 자체를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다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3. 유럽 한국어 교육자 협회

유럽에서의 한국어 교육을 엿볼 수 있는 창문 역할을 하는 학회 모임으로 '유럽 한국어 교육 협회(European Association for Korean Language Education: EAKLE)'가 있다. 2007년 한국 국제교류재단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그 후 2008년 터키 앙카라 대학교, 2010년 영국 런던 대학교 SOAS, 2012년 체코 찰스 대학교, 2014년 이탈리아 카포스카리 베네치아 대학교, 2016년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교, 그리고 2018년 핀란드 헬싱키 대학교에서 주최했으며 2020년 모임은 프랑스 엑스-마르세유 대학교에서 주최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처음 시작은 유럽에서 한국어 교육에 관여하고 있는 교육자들이 만남의 시간을 갖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데에 의미를 두었다. 그러나 십수 년 넘게 해를 더하며 참가자 수도 증가하고 모임의 성격도 달라져 2018년 헬싱키에서 개최된 모임에는 유럽과 한국뿐 아니라 미주 지역 및 아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어 교육자들도 참가하여 총 82명이 자리를 함께한 가운데 45개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학회 초기 발표 논문들 중에는 문화 수업을 중심으로 하는 내용도 여럿 포함되었으나 차차 그 비율이 감소하였고, 헬싱키 모임에서는 갑작스럽게 대폭 증가한 논문발표 신청자의 수를 제한하는 방편으로 어쩔 수 없이 한국학에 치중된 논문을 제외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문법과 발음 교육 및 습득, 순수 이론의 한국어 교실 적용, 한국어 학습의 사례, 세종학당의 실례 등을 주제로 하는 발표가 주를 이루어 어학 중심의 워크숍으로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더불어 2016년부터는 국립국어원에서도 논문 발표자가 참가하여 유럽의 한국어 교육자들에게 매우 유익하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여타의 학회와 마찬가지로 EAKLE 역시 매번 개최될 때마다 완성된 발표논문이 모두 실린 프로시딩을 제작하여 배포하였다. 이들 중 런던 대학교 SOAS에서 열린 제3차 EAKLE의 논문집이 '유럽 한국어 교육의 현황과 쟁점'이라는 제목으로 박이정을 통해 출판되어 시중에 첫선을 보인 데 이어 헬싱키 대학교에서 열린 제7차 EAKLE의 논문집도 도서출판 하우를 통해 두 번째로 출판되었다. EAKLE은 제1차 폴란드 바르샤바 모임을 필두로 제6차 덴마크 코펜하겐 모임에 이르기까지 줄곧 한국 국제교류재단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제7차 헬싱키 모임은 참가자 수가 한층 늘어나 그 규모가 대폭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아낌없는 후원에 힘입어 워크숍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EAKLE의 성장은 곧 유럽에서의 한국어 위상이 향상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2017년도에 바칼로레아로 불리는 중등교육과정의 외국어 중 하나로 한국어가 채택되었고 핀란드에서도 곧 그와 같은 지위에 오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어가 한국의 어엿한 국어라는 사실을 모르고 일본어나 중국어가 한국의 공식어로 사용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의식이 흐릿하게나마 존재했다. 하지만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한국어의 전용 문자인 한글의 편리성까지도 잘 알고 매우 흥미로워하고 있다.

한국어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케이팝을 애청하는 십 대 청소년 사이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팝이나 드라마 등의 대중문화와는 무관하게 대학교에서 순수한 언어학도로서 어문학, 또는 그 관련 학과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럽에서 거둔 이와 같은 관심의 대표적 결실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번안일 것이다. 이러한 성과를 계속 기대하기 위해서는 한국어학이 중추적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4. 한국어학 발전의 중요성

위에 언급한 사항을 차치하더라도 한국어학의 발전 도모는 중요한데, 이는 언어 자체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등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측면만을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화자의 정신을 다루는 학문이기도 하며 바로 그 나라의 정체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어학 부문의 주요 출판사 중 하나인 WILEY Blackwell을 통해 The Handbook of Korean Lingustics (Lucien Brown & Jaehoon Yeon: 2015)가 출간된 것은 매우 고무할 만한 일이다. 이는 세계의 여러 다른 언어들과 비슷한 관점과 방식으로 한국어를 학계에 알리고 주목을 집중시키는 데 이바지한 바도 있지만, 한국어가 한류와 함께 밀물처럼 몰려왔다 빠져버리는 흥밋거리가 아니라 지속적인 학문 탐구를 지향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과 또 한국어의 학습자 수의 증가와 함께 학문적인 연구도 그에 못지않게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언어학자였던 람스테트는 민족의 기원을 찾고자 핀란드와 관련이 있을 법한 여러 가지 언어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의 어학 연구에 대한 열심은 한국어를 익히고 연구하며 한국어와 한국 역사 강좌를 개설해 가르치는 데까지 이어졌다. 람스테트는 자신의 민족 정체성을 찾기 위해 당시 주변 열강들이 대립하는 격랑 속에서 보잘 것 없이 여겨지던 한 나라의 언어 연구에 몰입했다. 이를 또 다른 시점에서 생각해 보자면, 이러한 람스테트의 태도는 오늘날 한국어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분야에 종사하는 교육자 및 학자들에게 개인마다 그 구체적인 의미는 다르겠으나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 2019년도 한국학국제학술회의 발표문 ]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