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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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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에 대해 말할 수 있나요?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Zagreb)에 위치한 한국 대사관 내 흰색으로 칠해진 커다란 사무실에 앉아 있던 저는 “이제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을까요?”라는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 질문을 하신 분은 한국 정부 초청 장학 프로그램(KGSP) 이사회의 일원이었는데, 이 장학금은 제가 오랫동안 원했던 것으로 이제 그 기회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였습니다. 적어도 한국어로 대화를 해보자는 제안을 받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제가 한국어를 못해서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금을 지원받아 1년간 뉴저지에서 머물며, 불고기로 유명한 포트리(Fort Lee), 팰리세이즈 파크(Palisades Park) 등의 한인 타운에서 기본적인 한국어를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한국인 친구들을 통해서 저는 한글을 읽고 쓰는 법, 기본적인 표현들을 사용하고, 심지어 한국어로 농담하는 것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언어학자로서 언어의 패턴과 규칙에 대한 필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초급 수준의 한국어 문법은 이미 다룰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흰색으로 칠해진 그 사무실 안에 앉아 있었을 때야 제가 한국어를 학습하면서 간과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이전에 한국어로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있었지만,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과 마주 앉아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제가 배웠던 반말은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 친구들이 가르쳐 준 많은 비속어와 몇 가지 격식적인 기본 구절이 떠올랐지만 결국에는 몇 마디 하지도 못한 채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포기하고 면접관들에게 사과했습니다. 볼품없는 한국말로 면접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는 다시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나을 거라고 제의했습니다. 다행히도, 면접관들은 유머 감각이 뛰어난 분들이었고, 그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저의 반말과 존댓말을 칭찬했습니다. 그 칭찬은 단지 친절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 인터뷰는 제 한국어 학습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는 상황에 맞는 한국어를 배우기로 했습니다.

보스니아의 사라예보(Sarajevo)로 돌아가게 되면서 제 계획에 첫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전 세계를 휩쓸었던 한류가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의 해안까지는 닿지 않았습니다. 매년 여름 이곳을 방문하는 소수의 한국 관광객들이 있긴 했지만, 공식 대사관조차 없다는 사실은 보스니아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존재감이 어떠한지를 말해줍니다. 발칸 반도 내에서도 특히 세르비아에 한국 문화가 많이 퍼져있고, 크로아티아에도 많은 한국인이 일하고 거주하고 있지만, 보스니아에서는 여름에 방문하는 모든 관광객을 그저 ‘아시아인’이라는 한 가지 이름으로 부를 뿐입니다.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자면,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보스니아는 여름 휴가철에도 인기 있는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동양인 관광객들을 찾아보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변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과 만남에 익숙하지 않았던 보스니아 사람들은 동아시아 국가 사람들을 인식하고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러한 이슈가 한국어 교육(Korean Language Teaching, KLT) 분야에서 발간되는 다수의 교재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과 서구 지향적인 국가들에서, 언어 교육은 문화 교육으로 시작합니다. 물론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은 적어도 한국에 관한 기본적인 것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한국어를 배울 생각이 없었던 새로운 학습자를 유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어 교육 교재, 웹 페이지, 무료 온라인 강좌 및 언어 신청서 등을 훑어보았지만, 스터디 인 코리아(Study in Korea)라는 이름의 웹 페이지 외에는 어떤 곳에서도 홍보 문구가 없었고 한국어를 꼭 배워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섹션 또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21 세기에 한국말의 중요성에 대해 보스니아인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동기 부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 모두를 고려하여, 제가 한국어 교재 수정에 대해 권고드리고 싶은 바는 상기에 언급한 교재들이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과 교재를 발간하는 목적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가 직접 한국어의 인기를 높일 것이라고 가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정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 발칸 반도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 사회와 문화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가 있다고 하지만, 한국어 교재는 이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저와 대화를 나누었던 학습자 중 많은 이들이 음악이나 TV쇼를 통해 한국어를 듣고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지만, 학습자에게 있어 초기의 동기 부여가 한국에 대한 정보의 주요 원천으로 남게 된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저의 한국 친구들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는 한국어 학습자들과 어색한 대화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어 학습자들은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한국어 문구나 언어 요소를 사용하여 의도치 않게 불쾌감이나 충격을 주었습니다.

저는 언어 교재에 상황과 맞지 않는 사례가 자주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언어학자로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가능한 한 이러한 경우를 줄여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를 바로잡으려는 올바른 시도를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언어 교재는 주로 반복적인 훈련과 발음 교정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직접 교습 또는 듣기와 말하기 연습 방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개정판들은 본질적으로 기능적이거나 상황적으로 흥미를 끌 만한 활동과 유용한 어휘로 구성되었지만, 그런데도 언어 교육의 이유인 ‘왜’라는 부분에 대한 답변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교재들 가운데 한 교재의 경우에는 '왜'라는 질문을 못 하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그 교재의 저자들은 "학생이 질문하기를 원한다면 유용하고 답변 가능한 질문을 해야 한다. “라고 명시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4년 동안 영어를 가르쳐 본 경험상, ”왜“라는 질문에 답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이 현재 학습하고 있는 영어를 상황에 맞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언어는 문화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특히 한국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해당 언어가 주요 문화적 규범과 가치를 반영하고 있을 때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따라서 제시된 지식을 맥락화하고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학습자가 습득하게 될 문법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는 예로 온라인 공개강좌 플랫폼 중 코세라(Coursera)에서 연세대가 제공하고 있는 2개의 한국어 강좌가 있습니다. 이러한 강좌들은 직접적인 언어 교수와 문화·사회적인 교육을 균형 있게 제공하고 있고, 저는 이들 강좌를 통해 체계적인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한국어를 배우는 첫 주에 한글을 터득하는 동안, 강사가 개별 음에 대해 음운론적으로 문자 모양 구조를 설명해 주었고 세종대왕의 한글 발명에 대한 논리를 자세하게 설명 들었을 때는 한글의 배경 논리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어는 제게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살아 있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국어를 배우게 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공부하고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저의 의지는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언어 실습 자료가 실생활의 상황별 언어 수업을 제공하는 강력한 콘텐츠 기반이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익힌 과일과 채소 이름의 대부분은 교과과정에서가 아니라 H-마트에서 쇼핑하며 그리고 한국 음식을 요리하면서 배운 것입니다. 카카오톡을 다운로드해 친구들에게 한국어로 메시지를 보내 달라고 부탁해서 한국어로 채팅하고 문자 보내는 것도 배웠습니다. 이른 아침까지 밤새 친구들과 삶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소리와 음절과 문법이 언어의 몸체라면 문화는 언어의 영혼입니다. 보스니아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제가 접했던 대부분의 학습 자료들은 혼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언어 교실에서 혹은 교재로 실생활의 학습을 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습자와 밀접하게 관련 있는 경험을 통해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수십 년 전 존 듀이(John Dewey)는 행동(실천)을 통해 배우는 경험적 학습 이론을 제안했습니다. 한국어 교재에서도 이러한 이론적 접근 방식을 구현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하며 오로지 규범적이기만 한 언어 학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교재의 한 페이지를 할애하여 학습자에게 간단한 한국어 요리를 해보도록 한다거나 친구에게 한국어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역사적인 영화나 프로그램을 볼 것을 권해야 합니다. 이런 방식을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한국어 교육 자료에서 영어 교재와 같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는 실생활 언어와 관련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영어는 현재 하나의 기능적 교수법을 개발하기에는 너무 많은 당사자가 관련되어 있지만, 한국어 교육(Korean Language Teaching, KLT)은 진화할 수 있는, 그리고 차세대 혁신으로 이끌 기회를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이 지속적해서 추진하고 있는 일이 아닐까요?

저는 현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실용 교수법과 학습 자료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에세이를 통해 한국문화교류센터(Center for International Affairs)의 관심을 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또한 보스니아와 같이 여러 작은 발칸 국가들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한국어 학습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보스니아는 정상을 향해 꾸준히 부상하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이제 막 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보스니아의 언어학자로서 제 개인적으로 한국어를 홍보하기 위해 일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지역 사회에 새로운 문화를 소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하며, 이를 위해 현지의 한국 대사를 찾아갈 것입니다. 윌리엄 J. 풀브라이트(William J. Fulbright)는 "교육은 국가를 인격체로 변화시킬 수 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적어도 한동안은 저에게 존댓말로 대화를 요청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수상]
Eldin Milak

(활동국가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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