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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현지 통신원

국제화 시대, 교육과 문화 교류가 진정한 외교

한국에서 7년여간의 역사 교사 생활을 하다가 2007년 베트남의 한국국제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처음 이곳에 입국할 때는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하였다. 1990년대 초 도이모이로 한국식 교육과정의 틀대로 운영되는 한국국제학교에서 분주하게 한국의 청소년들과 다문화 가정 자녀들에게 한국사와 세계사를 지도하였다. 한국에서 특목고, 일반 인문계고교, 실업계 고교, 대안학교 등 거의 다양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느꼈던 것은 각 학교의 특성 및 학생의 특성에 맞추어 교육은 능동적 창의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곳 베트남에 왔을 때, “한국의 역사와 세계의 역사 내용을 어떻게 재구조화하여 가르칠 것인가?”라는 고민을 많이 하였다. 더불어 한국국제학교와는 협력 관계에 있었던 인근 대만학교, 일본학교, 미국학교(SSIS), 영국학교(BIS) 등의 교육과정을 분석해 본 결과 한국식 교육의 장점 못지않게 그들의 장점도 아주 많음을 발견하고 장점을 융합하여 역사 수업에 반영하고자 노력하였다. 구체적인 노력으로 개념과 용어 중심의 발견학습과 STEAM 교육(미국 버지니아 공대가 시작했던 과학-공학-기술-예술-수학 융합 교육)에 주목하여 수업을 진행하였다. 특히 2011∼2013년에는 교무부장으로 공교육기관의 교육과정을 국제화 시대에 맞도록 재구조화하였다. 이때 동료 교사들과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첫째 변화하는 국제화 시대에 맞도록 교육 과정을 편성하는 것, 둘째 점증하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2014년 기준 호찌민시 한국 국제학교의 다문화 가정 자녀 비중은 초등의 경우 약 50%, 중고등학교의 경우 약 30%)을 위한 교육과정의 편성, 셋째 해외 학교의 특성에 맞추어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홍보할 수 있는 교육과정의 편성이었다.

한국식 교육과정의 틀(2007 교육과정 및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맞추어 학사와 교수-학습을 운영하면서 한-베 가정이라 불리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은 학교 교육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한계점이 있었고 주로 어머니가 베트남이며, 아버지가 한국인이었던 한-베 가정 아이들의 경우 한국에 대한 문화 정체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베트남에서 출생하고 베트남 문화에서 성장한 그들에게 “모국이 어디인가?”라고 물으면 서슴지 않고 “베트남이요”라 대답했다. 비록 그 아이들이 베트남의 시민인 것은 맞았지만 한국의 측면에서 보면 적지 않은 그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또 하나의 모국일 수 있는 한국에 대하여 무지하거나 한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학교로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였으며, 향후 10년 20년 앞을 내다본다면 큰 국가적인 문제라는 것이 당시 교장 선생님과 교감 직무대리이자 교무부장인 필자의 소신이었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교육과정을 대대적으로 개편하였다. 우선 국어 시간을 양적으로 확대하기보다는 주당 4∼5시간 편성되어 있어 국어 시간을 한국어 교육을 병행하도록 하였다. 일부 반대가 있었지만 새롭게 ‘작문’, ‘화법’, ‘국어 교사들의 문법, 문학작품 독해, 고전문학 분석 등에 치중하던 기존의 수업 운영에서 말하기(토론), 쓰기(논술)로 전환하도록 하였다. 그 밖에도 ‘국제이해’ 과목을 신설하여 학생들이 국제 감각을 함양하도록 하였고, 주당 2시간씩 현지어인 ‘베트남어’를 공부하여 현지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도록 하였다.

필자는 한국국제학교에 재학 중인 청소년들 이외에도 호찌민시의 외국계 국제학교에 재학하는 한국계 청소년들에게도 주목하였다. 이들은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프랑스, 싱가포르 등의 교육과정 체계를 따라가는 외국계 국제 학교 학생들로서 대부분 해당국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비교적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 대부분이 의사소통 수준의 한국어만 가능하지 한국어에 대한 이해와 심화한 지식은 부족하고,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지식은 매우 부족하였다. 이들이 한국 경제 성장과 세계화의 ‘축복받은 존재’인지, 아니면 ‘국제 미아’가 될지는 대개 대학을 들어가거나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할 때 비로소 판명된다. 이 청소년들은 분명 대한민국 발전의 좋은 인재임과 동시에 그들 한 명 한 명 각각이 해당 학교의 수많은 인종, 민족, 국적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을 홍보하는 민간 외교관이었다. 필자는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총 8년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한글학교 역사 교사로 한국의 역사를 가르치고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내면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최근 3년 동안은 한글학교 중고등학교 교무부장을 맡아 한글 문해 교육 중심의 교육과정을 직접 편성해 놓아 운영해 왔다.
한글 학교 수업 및 행사
필자의 가르치는 즐거움은 한 가지 더 있었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필자는 국립 호찌민 인문사회대학교에서 베트남 현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쳤다. 한국어를 교수할 때 무미건조한 회화 자료만 한 시간 내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예로 들어가며 가르쳤을 때 한국어 습득능력이 향상됐고, 한국이란 나라와 한국 사람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인식이 더욱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지난 8년 동안 대학교에서 가르쳤던 학생들은 대략 1천여 명 정도 된다. 그들은 필자와는 사제 간임과 동시에 친구였다. 우리의 첫 수업은 항상 ‘아리랑’ 노래를 다 같이 부르며 시작하였다. 아리랑을 통해 필자는 베트남 사람들과 비슷한 한국인의 정서와 역사를 체험하도록 했고, 수업 중간중간에는 동북공정, 독도, 한국의 유명 시, 한국의 의복 문화, 한국의 음식 문화 등을 소개하며 회화를 익힐 수 있도록 하였다. 외국인이 ‘떡국’을 먹으며 설 명절과 송편을 먹으며 추석 명절을 체험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교육, 아름다운 홍보가 또 어디 있겠는가? 필자는 베트남에 있는 한 베트남 대학생들과 만남 및 교류는 게을리하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은 경제적으로 효과가 없어 보이지만, 그렇게 한국 선생님에게서 친절을 받고, 한국 문화를 구체적으로 체험해 보며, 한국어를 역사와 문화 이야기로 배운 필자의 베트남 제자들이 10년, 20년, 30년 후 베트남을 이끌어 나아갈 인재이자 지도자 집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망하기를 필자의 베트남 제자들과 한국 제자들이 서로 교류하고 서로 소통한다. 필자와 같은 기성세대의 의무는 바로 그런 소통의 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며, 서로가 더욱 이해하기 쉽게 보편성과 특수성을 정확히 짚어 주는 것이다. 필자는 매 수업 시간, 한국의 중고등학생들을 택시에 태워서 국립 호찌민 인문사회 대학교에 데리고 가서 양국 학생들이 서로 소통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어떤 아이는 단순한 호기심에, 어떤 한국 학생은 봉사활동이 탐이 나서 오기도 하지만 일단 양국의 청소년들이 서로 교류를 시작하며 서로 간 신뢰를 구축하여 한 명 한 명의 인생에 뿌듯한 상호교류와 협력의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좋은 일로 학생들이 깔깔깔 웃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수업이 종료되어 헤어지기 싫은 아쉬움에 눈물도 흘리고, 얼굴을 맞대고 자신의 속마음을 꺼내어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 웃고 우는 것. 이것이 진정한 외교가 아닐까? 이것이 진정한 ‘문화 교류’가 아닐까?

한국국제학교 교사로 일관되게 추진했던 것이 베트남 현지 사회에 독도를 와 동북공정을 알리는 홍보 활동이었다. 역사 교사에게는 당연한 의무였고 소명이었지만 사실 쉽지는 않았다. 그간 호찌민 청소년 독도 플래시몹 행사(유튜브), 독도 교내 전시, 독도 사진 길거리 전시, 베트남 대학 축제 시 한국 전통문화 및 독도 전시회 개최 등의 행사를 진행했었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초등∼고등학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지만, 대학 입시 준비에 찌든 고등학생들은 선뜻 나서지 못하였으며 다수의 경우에는 부모님들이 반대하셨다. 학교가 따로 예산을 정하지도 못했기에 사회과 예산 및 동아리 예산 내에서 항상 초과가 되어 필자의 부담이 컸다. 다행스럽게도 필자는 학생들을 조직하여 교육부의 ‘독도지킴이 학교’로 선정되기도 하였고, 경상북도 독도 수호과의 지원을 받아 대규모 독도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한국의 언론사에서는 대대적으로 필자와 학생들의 활동을 널리 홍보해 주었다. 그 모든 노력의 결과 2011년에는 교육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님께서 주시는 특별상을 받기도 하였다. 필자는 독도와 동북공정 등 우리 역사를 홍보할 때에 베트남 현지인들에게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 동병상련하는 점을 추출하고, 현지의 중국 사람들에게는 과거 문화의 동질성과 교류 관계를 강조했으며, 일본 청소년들에게는 양국의 미래에 초점을 맞추어 함께 대화하고 토론하였다. 역사의식을 함양하고, 한국의 역사를 알리는 목적은 같으나 대상과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내용을 재구성하고 접근 방식을 달리했을 때 보다 큰 성취가 있었다.
독도 알리기 행사
마지막으로 베트남 현지에 살면서 한국이 동아시아의 타국보다 훨씬 정치·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임에도 실제 결과에서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현상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동아시아 국가 한, 중, 일, 러 네 나라가 베트남에서 자국의 문화와 역사를 경제에 이용하여 홍보하는 것을 보면 세 나라의 개성 및 정부의 전략, 그리고 세계화에 대한 대응 자세를 여실히 파악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정부가 철저하게 밑그림을 그려 놓고 기업들이 마케팅을 통하여 일본 문화를 베트남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외교 기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논쟁이 되는 역사 문제뿐만 아니라 일본 문화에 대한 상세한 설명 및 전통문화에 대한 설명이 비교적 상세하게 잘 정리되어 있어 현지 외국인들이 일본 문화에 대한 정보 및 현대 일본의 발전상에 대하여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게 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일본 정부는 베트남 시민들을 위한 ODA 등을 통해 양국 간의 친선을 구축하는 데 아낌없는 투자를 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의 경우에는 일본 고유의 전통 관습과 경영 철학을 유지함은 물론 각종 문화 축제 행사를 진행하며 문화상품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어쩌면 2015년 현재 아베노믹스와 과거사 문제로 베트남 및 동남아시아 현지에서 일본 정부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 일본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것은 정부의 노력, 기업의 거시적인 접근이 있었기에 가능한 듯하다. 중국 정부는 최근 들어 영해 문제, AIIB 설립, 미국과의 대립 등을 이유로 동남아시아 각국에 공을 들이고 있다. 대규모 직접 투자는 물론이고 19세기 초반부터 이주해 정착한 100여만 명의 중국계 또는 화교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중국 국격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중국 본토는 물론이고 홍콩, 대만 등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춘절(설), 추석(중추절) 등의 명절과 노동절 등의 행사 때에는 국가와 민간이 힘을 합쳐 성대한 축제를 벌이고 있다. 자연스럽게 중국 문화의 영향력이 확대됨은 물론 ‘중국’의 이미지가 베트남 사람들에게 친구이자 부유한 나라로 자리매김 감을 느낄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이 추구하는 일대일로 정책에서 동남아 지역은 신 바닷길의 관문이자, 신실크로드의 배후지로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인 듯하다. 러시아의 경우에는 아시아로의 회귀와 강한 러시아 정책을 실현하기 위하여 전통적인 사회주의 동맹 관계를 은연중 강조함은 물론 자원과 관광 분야에 베트남과의 교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베트남이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러시아 국력이 확장되는 중요한 길목이라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중국, 일본, 러시아의 베트남과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국가와 문화 홍보 전략에 비교할 때 한국은 몇 가지 장점과 더불어 단점도 가지고 있음을 매일 목격하게 된다. 한국의 가장 큰 장점은 비교문화사적인 관점에서 한국과 베트남은 문화적 동질성이 크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이었던 중국의 침략을 반복적으로 받으며 주권의식과 민족의식이 정립되었으며 유교와 한자 문화, 대승불교와 도교 문화 등을 공유하여 문화적인 동질성이 매우 크다. 또한 최근의 한류 역시 베트남 현지인들에게는 동경과 본보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빠른 경제 성장을 요구하는 개발도상국 베트남은 한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 운동 역시 학습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 결과 현재 대략 13여만 명의 한국인들이 베트남에 거주하고 있고, 전체 베트남 수출의 약 60%를 한국 기업들이 담당하고 있을 만큼 양국 간 교류는 활발해 보인다. 그러나 내용 면에서 중국만큼 거시적이지 못하고, 일본처럼 국가와 민간이 추진하는 일본 문화 자본화를 통한 경제적 시너지 효과 창출 전략에는 한국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더욱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접근 전략이 부재하다는 것, 국가와 민간의 협력 체계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 외교가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공적인 영역에서만 제한되어 운영된다는 것, 한류 문화가 지나치게 경제적 이익 창출에만 몰입하고 문화 콘텐츠의 개발 및 현지화에 대한 고민과 투자가 부족하다는 것, 베트남 시민들의 문화 특성 및 역사 인식은 간과하고 서구의 합리주의로만 접근한다는 것 등이다. 안타까운 것은 GDP 대비 막대한 재원과 노력을 기울임에도 불구하고 국, 일본, 러시아보다 그리 경제적이지도 않고 효과가 크지도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실제 2015년 현재 한국은 베트남의 중요한 무역 상대국이다. 또한 베트남의 섬유, 철강, 기계, 신소재 산업 등은 한국 기업에 의존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에 대하여 무상 원조는 물론이고 문화 사업 및 인프라 투자를 함에도 성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투자한 만큼 존경을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문화이해의 문제인 듯하다.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존중, 배려, 문화 이해, 소통 등을 위한 노력이 국가와 민간 모두 취약해 보인다. 한국인들의 의식 기저에는 아직도 베트남을 가난한 사회주의 국가 또는 열등한 사회라 인식하다 보니 베트남 시민 개개인에 대한 정성과 교류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평상시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 여성의 살인, 이주 노동자에 대한 편견, 임금 착취 및 저임금 문제, 통상 마찰, 분쟁 등의 사례가 발생할 경우 한국 정부와 시민들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급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대로, 베트남과 동남아시아 지역은 경제적으로 향후 대한민국에 중요한 지역이며, 협력과 교류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 간 이벤트성 사업 추진이나 대기업 중심의 경제 논리적 접근의 결과 다수의 베트남 시민들은 한국에 대하여 ‘조금 더 부자인 나라, 하지만 일본과 중국보다는 가난한 나라’로 각인되어 있다. 이 현상은 비단 베트남뿐만 아니라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사례일 것이다.

“급할수록 천천히 가자”라는 속담이 있다.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한국의 문화를 널리 알리는 한류의 발전도 중요하며,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민간 교류일 것이다. 한국과 베트남, 한국과 세계 인류가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문화를 창출해 나가야 한다. 한국 정부는 외국인에게 더욱 개방적이며 존중하는 서비스를 해 주어야 하고, 민간에서는 베트남의 전통, 문화, 역사를 존중해 주며 그들만의 특수성을 존중해 주며 한국 정부와 한국인 스스로 국제 감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진부한 말이다.” 격하하는 이가 있을 수도 있는 비효율적이다 비판할 수도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역시 국가와 국가 간, 민간끼리의 ‘예의’와 ‘신뢰’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하에서 필자는 지난 9여 년간, 한국국제학교에서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역사교육을 통하여 올바른 민족관, 국가관, 한국 사회에 대한 자부심과 비판적 사고력을 갖도록 가르쳐 왔고, 국립 호찌민 인문사회 대학교에서는 베트남 학생들에게 한글 교육 및 한국 전통문화를 소개해왔다.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한국인임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정체성을 확립할 아마도 필자, 동료 교사, 자원봉사 학생들의 노력이 모여 한국의 국격을 보다 높이고 한국 문화를 보다 효과적으로 세계에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조명을 받을 일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대단한 일도 아니었지만, 베트남 현지인들에게 한국을 알리고,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지속 가능한 투자’이며, ‘인류 공동의 행복 창출’임을 믿는다.

그래서 올해도 현재 필자는 학생들을 모아 호찌민시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고, 매주 금요일마다 국립호찌민 인문사회대학교에 가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친다. 나와 학생들은 분명 민간 외교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노라 자부하고, 우리의 작은 날갯짓이 미래에 커다란 폭풍이 되어 한국 문화가 발전하고 한국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을 확신한다.

글 | 장석만
(활동국가 :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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