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


한국 현대사의 시작에 대해서는 1919년, 1945년, 1948년, 미래의 통일되는 날, 1926년(북한의 입장) 등 다양한 입장이 있지만 대체로 1945년 해방 이후를 현대사로 인식하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1945년 해방은 일제 식민지배 하에서 계속된 민족해방운동의 성과이자 제2차 세계대전의 소산이었다. 해방 이후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민족운동은 미·소의 한반도 분할점령으로 좌절되었다.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활동과 남북연석회의 등이 전개되었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1948년 성격을 달리하는 두 개의 단독 정부가 남북한에 각각 수립되어 민족은 갈라졌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민족분단의 불안정을 토대로 일어나 냉전적 국제질서로 인해 확대되었다. 전쟁 과정에서 한반도 전체가 초토화되었고, 적대적인 점령정책으로 심각한 이념갈등과 인명살상이 초래되었다. 1953년 7월27일, 휴전이 성립되었으나 전쟁으로 인해 민족분단과 남북의 이질화, 체제 경색이 더욱 심화되었다.

남한에서는 전쟁을 거치며 반공독재체제가 강화되었다. 이승만과 자유당 정부는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을 통과시키며 물리력과 부정선거로 정권을 유지하였다. 1960년 3·15 부정선거와 이에 항거하는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부는 몰락했다. 그러나 1961년 박정희가 주도한 5·16 군사쿠데타로 한국사회는 30여년에 걸친 군사독재를 겪게 된다. 1979년 박정희 사망 후 등장한 신군부는 5·17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반민주적 독재정치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자주·민주·통일을 요구하는 민족민주운동이 발생하였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7-9월 노동자대중투쟁 등 일련의 민주화운동은 군사독재를 종식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대중운동과 조직건설이 노동자, 농민, 언론, 교육, 문화예술의 각계각층에서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와 같은 바탕위에서 1993년에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였고, 1998년에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5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전후 남한의 사회체제는 국가권력의 강력한 주도에 의해 자본주의를 전개시켰다. 1950년대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원조, 1960년대 차관에 의한 경제개발, 1970년대 중공업화 정책, 1980년대 경제 개방 등은 남한 자본주의 성장의 과정이다. 자본주의 발전으로 남한사회는 경제의 양적 성장을 이룩하였으나 대외의존과 경제적 불평등이 커졌다.

한편, 한국전쟁 이후 북한은 독자적 사회주의 건설을 추진하였다. 이는 중·소 대립을 기점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북한은 이러한 건설 과정에서 주체사상을 강화하여, 1980년대 이후에는 사회주의 건설의 총체적 임무로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김일성 사망 후 북한은 정치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으며, 변화를 요청받고 있다.

휴전회담 이후 민족통일 노력 또한 전개되었다. 1971년 대한적십자사는 남북적십자회담을 북측에 제의하였다. 남북한 당국은 이듬해 1972년에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7·4 남북공동성명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원칙에 합의하였다. 1985년에는 통일 논의의 전개를 통해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예술 공연단의 교환 방문이 성사되었다. 1990년대에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분단 이래 최초로 남북 정상이 회담을 갖고, 6·15공동선언에 합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