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위안부(일본군위안부)


종군위안부는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 인력 수탈의 하나인 정신대(여자근로정신대)에서 일본군의 성노예로 이용한 여성들을 말한다. 흔히 종군위안부라고 알려져 있지만, 종군위안부는 자율적으로 돈을 벌기위해 일본군에게 몸을 판 여성을 의미하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하기 위해 일본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여성들은 일본군위안부라고 표현하는 것이 올바르다.


일제는 1937년 7월, 중국을 침략한 후 국가체제를 전시총동원체제로 전환, 국가 전 영역에서 강력한 군국주의적 통제력을 행사하였다. 이후 일제는 1940년 9월 독일, 이탈리아와 3국동맹을 체결하고, 1941년에는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제2차 세계대전에 가담하였다.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조선을 대륙병참기지로 설정하고, 조선의 인적 · 물적 자원을 침략전쟁에 동원하였다. 1938년 자원 동원을 위한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을 조직하고, 1939년에는 국민징용령을 공포하여 조선인들을 공사장, 군수공장, 전쟁터로 강제 연행하였다. 초기에는 모집형식을 취하였지만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강제로 연행하기 시작했다. 태평양 전쟁 개시 후에는 행정력을 총동원하여 근로보국대, 정신대라는 명목으로 공공연히 조선인들을 납치 · 연행하였다. 끌려간 조선인은 광산, 발전소, 도로공사장, 군사기지 등에서 노동자, 포로감시원, 군 ‘위안부’가 되어 살인적 착취와 학대에 시달렸다. 1939년 이후 일제가 강제 연행한 인원은 한반도 내에 약 480만 명, 일본 열도에 152만 명, 군대요원 20-30만 명 등이다.
종군 ‘위안부’는 일제가 일본군 성노예로 이용하기 위해 동원한 여성들이다. 정확한 동원 인원수에 대해서는 당시 관련 자료가 제대로 작성되지 않았거나 패전 이후 일제가 자료를 인멸했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8만-20만 명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중일전쟁 이후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조직적 · 반복적 성폭행을 당했던 피해 여성들은 경찰과 군에 의한 물리적 폭력과 취업 사기로 동원되었다. 식민지이고 전시라는 상황에서 경찰과 군은 조선총독부와 연계하거나 단독으로 필요 인원을 동원하였다. 일제는 전쟁을 일으키면서 군대 성욕 해결, 현지 범행 방지, 성병 예방을 위해 ‘위안부’ 제도를 창설하였다. 일본 군부는 직접 ‘위안부’ 동원 정책을 입안하였다. 처음 위안소를 설치한 시기는 1932년으로 확인되지만 1937년 이후 전쟁이 장기화되고 전선이 넓어지면서 ‘위안부’를 더 필요로 했다.

일본군과 국가는 주도적으로 군 ‘위안부’를 동원하였다. 일본군이 민간업자를 선발하여 위안소개업을 직간접적으로 도와주고 통제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농촌과 도시의 여성들에게 공장 취직, 간호원, 여군 등의 구실로 여성들을 유인하였다. 이 여성들은 일본군이 있는 곳에 설치된 위안소에서 생활하였다. 군 위안소는 군이 직영하는 곳과 민간업자가 경영하는 곳으로 나뉘지만 위안소 운영의 제반 상황은 일본군이 감독 · 통제하였다.

군 ‘위안부’ 생활은 군이 제정한 ‘위안소 이용규칙’에 따라 통제되었다. 이 규칙은 군인 상대 시간과 수, 요금, 성병 검진, 위생 상태를 규정한 것이다.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은 위안소에 감금되어 반복적 · 조직적 성폭행, 구타, 각종 학대를 당하는 성노예 생활을 강요받았다.

‘위안부’ 문제의 초점은 동원, 수송, 위안소 설치, 운영 통제에서 일본군과 일본 정부, 조선총독부가 직접 개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본군 수뇌부가 이 제도를 만들고, 일본 정부가 이를 지원하여 ‘위안부’ 피해자를 양산한 것이 이 반인륜적 범죄성의 핵심이다.

군 ‘위안부’ 여성들은 패전 이후 일본군에게 학살되거나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귀국하기도 하였다. 많은 여성들은 혼란스러운 당시 상황 탓에 귀국 방법을 모르거나 귀국 후 생활에 대한 우려 때문에 현지에 남았다. 지금도 중국, 타이, 캄보디아 등지에 피해자들이 잔류해 있다. 귀국한 여성들 또한 정신적 · 육체적 피해의 후유증과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문화, 빈곤으로 인해 평탄한 삶을 살 수 없었다.

1991년 최초로 실명 증언자(김학순, 1922-1997)가 나온 이래 최근 북한에서도 ‘위안부’ 피해자가 증언에 나선 바 있다. 일제의 가장 큰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이들에게 현재 일본정부는 공식적인 사과는 물론 ‘위안부’ 동원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