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茶道)

다도(茶道)는 차를 마시는 일과 관련된 여러 다사(茶事)를 통해서 심신을 수련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차는 처음에는 음료수의 일종이나 약용으로 등장했지만, 차차 기호식품화 되면서 취미생활과 연결되었고, 다시 일상생활의 도(道)를 끽다와 관련지어 다도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다도가 성립된 것은 8세기 중엽 당나라의 육우(陸羽)가 ≪다경 茶經≫을 지은 때부터 비롯된다. 그 뒤 다도는 중국을 비롯한 우리나라·일본 등에 널리 유포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 말에는 차가 있었고, 9세기 전반 경에는 성행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에는 귀족층을 중심으로 다도가 유행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사원을 중심으로 그 전통이 이어졌는데, 19세기 초기에 이르러 우리나라의 다도는 다시 한번 일어났다.

특히 초의는 ≪동다송≫을 지었고, 또한 차를 재배·법제하는 등 다도의 이론적인 면이나 실제적인 면에서 크게 정리, 발전시켰다. 초의는 다도를 “따는 데 그 묘(妙)를 다하고, 만드는 데 그 정(精)을 다하고, 물은 진수(眞水)를 얻고, 끓임에 있어서 중정(中正)을 얻으면, 체(體)와 신(神)이 서로 어울려 건실(健實)함과 신령(神靈)함이 어우러진다. 이에 이르면 다도는 다했다고 할 것이다.”고 하였다. 즉 초의에 의하면 다도는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진 차로 좋은 물을 얻어 알맞게 잘 우러나게 해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도정신〕 다실의 분위기, 다구의 아름다움, 차의 성품, 차를 끓이는 여러 가지 일 등에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이를 다도정신이라고 한다. 한국의 전통 차시를 통하여 한국의 다도정신을 몇 가지로 유형화시켜 볼 수 있다. 다도의 수행은 각성하는 생활을 목적으로 한다. 차는 잠을 쫓아 준다. 잠은 혼미와 번뇌로 통한다. 한 잔 차로 두 눈이 밝아진다고 했으며, 차는 울적한 마음을 다스리고 막힌 가슴을 열리게 한다.

초의가 “차의 맑고 깨끗한 정기를 들여 마실 때 대도(大道)를 이룰 날이 어찌 멀다고만 하랴!”고 했던 대도는 곧 깨달음이기도 하다. 차의 성품은 삿되지 않다. 즉, 무사(無邪)이다.

초의가 “예로부터 현성(賢聖)들이 함께 차를 사랑하였음은 차가 군자(君子)와도 같아 그 성품이 무사한 때문”이라고 한 것도 이를 강조한 말이다. 또한 한국의 다도정신에서는 중정이 강조되었다. 이는 중국의 다 정신에서 강조하는 중용(中庸)이나 일본에서 강조하고 있는 화(和)와도 상통한다.

다도를 통한 수행은 고아한 인품을 추구한다. 이규보는 차를 ‘규중의 귀한 처녀’에 비유하였고, 이숭인과 김명희(金命喜)는 “좋은 차는 아름다운 사람과 같다.”는 구절을 즐겨 썼다. 이것은 물론 소동파(蘇東坡)의 차시에서 인용한 것이지만, 그만큼 차는 아름다운 사람과 같다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를 통해서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초월하고자 하였다. “맑은 바람을 타고 티끌세상을 벗어나고자” 한 표현과 바람은 많다. 당나라 노동(盧同)이 쓴 다가(茶歌)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세속적인 것으로부터의 초탈을 희구하던 도가적인 다도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초탈이 세상을 등지는 것은 아니다. 다선일미(茶禪一味)는 한국은 물론 중국·일본 등에 두루 통하는 다도정신의 한 표현이다.

이규보의 차시 중에 “한 잔 차로 곧 참선이 시작된다.”는 구절은 차와 선이 한 맛으로 통하는 경지의 표현이다. 김정희는 초의에게 ‘명선(茗禪)’이라는 글씨를 준 적이 있고, 초의는 차를 마심은 곧 법희선열식(法喜禪悅食)이라고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다선일미의 사상은 당나라의 백장(百丈)·조주(趙州) 등에 의해 더욱 강조되었다.

다도는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며, 그 잘 끓은 물과 좋은 차를 간 맞추어 마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취미생활이지만, 찻잔을 씻고 물을 길어 나르며 목마를 때 마시는 평범한 일을 통하여 진리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닦아 가고자 하는 것이다. 선(禪)도 또한 평상심을 떠나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차와 선은 한맛이 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