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릉은...

경주 시내에서 불국사역을 지나 7번국도를 따라 내려가면 왼쪽으로 '괘릉' 표지판이 보인다.

외동읍에 위치한 이 괘릉은 원성왕릉이라고 알려져 있다.

괘릉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있었던 작은 연못 위에 왕의 유해를 걸어서 장사지냈다는 속설로부터 기인한다고 한다.

괘릉이 누구의 능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원성왕의 능이 '토함산 서쪽 동곡사(洞鵠寺 : 이후 숭복사)에 있으며 최치원이 지은 비가 있다'고 하였으니, 주변에 숭복사터가 확인되었기 때문에 원성왕릉이라 추정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원성왕의 이름은 김경신이다.(재위 785~798)

김경신의 왕위계승은 극적이다. 선덕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왕의 조카뻘되는 김주원으로 왕을 세우려 하였으나, 김주원의 집이 서울(京) 북쪽 20리되는 곳에 살고 있었고 때마침 큰 비로 북천을 건널 수 없게 되자 하늘의 뜻으로 김경신이 바로 궁궐로 들어가 왕이 된 것이다.

결국 왕위 계승을 둘러싼 권력투쟁에서 김경신이 승리함으로써 한 사람은 왕으로, 한 사람은 명주(강릉)로 내몰려 반역의 시초를 마련하게 된다.(이후 그의 아들 헌창이 난을 일으킨다.)

괘릉은 신라의 왕릉 중 가장 잘 갖춰진 무덤이다.

소나무가 울창한 넓은 능역으로, 입구에는 한 쌍의 돌기둥이 마주 서 있고, 그 뒤에 무인석 한 쌍, 문인석 한 쌍 그리고 돌사자 두 쌍이 마주 보고 있다. 안쪽에 들어앉은 봉분은 원형의 토분으로 주위를 두른 둘레돌(호석[護石])이 갖춰져 있다. 이 둘레돌에는 각각 방향을 따라 12지신상이 돋을새김되어 있다. 봉분 주위에는 수십 개의 기동을 세워 난간을 돌렸다.

왕릉 지킴이 돌사자와 문,무인석

원성왕릉에 좌우대칭으로 서 있는 문인석, 무인석 각각 한 쌍 특히 무인석의 모습은 그 특이함으로 유명하다.
그 모습이 서역인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깊은 눈에 우뚝한 코 그리고 곱슬머리...
이국적인 얼굴과 섬세한 묘사와 자태가 무척이나 생동감있다.
이러한 얼굴을 가진 무인석이 흥덕왕릉에도 있다. 하지만 원성왕릉의 무인상에 비하면 덜 역동적이며, 덜 섬세하며 둔탁하다.
이러한 서역인의 모습은 경주에서 발굴되는 서역계 유물들과 함께 그들과의 직접적 교류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원성왕릉과 더불어 성덕왕릉, 흥덕왕릉 등은 돌기둥, 무인석, 문인석, 돌사자, 12지신상, 비석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성덕왕릉의 것은 온전하게 남아있지도 않고 12지신상의 경우 이후에 덧붙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신라의 능으로는 처음으로 석물들을 배치한 능이다. 원성왕릉과 흥덕왕릉은 성덕왕릉 이후 비교적 잘 갖춰진 능묘이다.

원성왕릉에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최치원이 지은 비가 있다고 하나, 그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흥덕왕릉에는 귀부가 잘 남아있고, 그 비편도 여러 조각 발견되었으며 그 중 '흥덕'이라는 글이 나와 흥덕왕릉으로 확정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물론 성덕왕릉에도 부서진 귀부가 남아있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성덕왕릉과 흥덕왕릉의 돌사자는 봉분을 중심으로 네 곳에 돌사자가 배치되어 있고 원성왕릉은 문인석, 무인석과 나란히 두 쌍의 돌사자가 배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배치된 이 돌사자들은 각각 자신이 지키고 있는 방위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다.
이러한 석물들은 평인과는 다른 위엄있는 왕들의 무덤을 지키는 역할들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실제로 이 능역에 들어서면 울창한 소나무로 이승과는 격리된 그 어떤 곳에 와있는 듯한 느낌과 함께, 당당하게 서있는 이들 석물들로 엄숙한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도 문인석, 무인석, 돌사자의 어디에선지 모르게 흐르는 귀여운 표정으로 잠시 미소를 짓게되기도 한다. 그래도 "함부로 이 곳을 넘본다면 가만 안두리라!" 무인석의 불끈 쥔 주먹과 금방이라도 호통이 터져나올 것 같은 꾹 다문 입이 봉분을 향하는 동안 뒤통수를 간지럽게 한다.

또다른 지킴이 12지신

원성왕릉의 봉토분 주변으로 2개의 둘레돌마다 하나씩 12지신을 새겨넣었다.

이 12지신상은 각각의 방향에서 무덤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다. 쥐(子)가 북쪽, 토끼(卯)가 동쪽, 말(午)이 남쪽, 닭(酉)이 서쪽을 나타낸다. 이들은 짐승의 머리와 사람의 몸을 가지고 있으며(獸首人身) 무복에 무기를 들고 있다.

이 능보다 빠른 시기의 성덕왕릉에도 12지신상이 봉분을 호위한다. 성덕왕릉의 그것은 둘레돌 외부에 입체로 조각되어 있다. 모두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무장이다.

성덕왕릉의 12지신상들은 대부분 머리 부분이 파손되어 그 원형을 잃었고 오직 원숭이와 닭만이 온전하게 남아있다. 성덕왕릉의 그것의 경우 이후에 배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12지신상을 고려했다면 12의 배수로 둘레돌이 만들어졌어야 하나 30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만들어진 둘레돌이 있었기 때문에 후대에 입체상으로 조각하여 둘레돌 앞에 덧장식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도 제시된 바가 있다.

경덕왕릉에도 12지신상이 돋을 새김되어 있는데, 이 역시 왕릉을 보호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고, 방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12지신상이 원성왕릉, 헌덕왕릉, 흥덕왕릉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12지신은 왕릉 외에도 김유신묘로 알려진 묘와 구정동 방형분, 능지탑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황복사터에서도 금당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능묘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12지신상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또한 용강동고분에서 방위에 따라 배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 7점의 청동제 12지신상, 마찬가지로 김유신 능묘 주변에 방위대로 배치되었을 것으로 보여지는 4점의 납석제 12지신상 등 다양하게 출토되고 있다.

신라의 12지신상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하더라도 머리만 동물 형상을 한 무인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은 신라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양상이다. 무복 차림의 능묘 주위의 12지신상은 짐승의 머리와 인간의 몸의 형상이라는 전통과, 불교의 사천왕상과 같은 무복을 갖추고 무기를 지님으로써 수호신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된다고 보기도 한다.

'아마도 내가 가진 띠도 나를 수호해주지 않을까?'하며 꼭 내 띠 앞에서 사진찍는 것을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