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과‘야뤼장,’두만강과‘투멘장’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교류센터 해외한국학지원실장 이완범

작년 어느 유명 중앙일간지 인터넷판에서 압록강(鴨綠江)의 지명 표기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2000년 국립국어원에서 제정한 이 강의 영문 이름은 ‘Amnokgang’인데도 불구하고 주요 언론사 등 기관에서 ‘鴨綠’을 중국식으로 읽은 Yalu라는 영문표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사의 인터넷 댓글에 의하면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그 일간지에서도 Yalu로 번역하여 쓴 기사를 발견할 수 있으니 Yalu라는 표기가 적어도 영어 할 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널리 퍼져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중국식으로는 얄루가 아니라 야뤼라고 읽어야 한다는 친절한 댓글도 있었다.

글로발한 시대에 표기야 어떻든 그 실체가 동일하면 된다는 실용주의적 접근에 기반한다면 ‘압록이냐 야뤼냐’의 문제제기가 오히려 고루한 민족주의의 표출처럼 보일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의 국경을 이루는 강이 일방적으로 우리 것일 수 없으므로 외국 지도책에 Amnok이라고 표기해 달라고 강변하면서 홍보하는 것도 역시 어색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말로 된 책에 야뤼강이라고 쓸 수 없으므로 영어로 된 우리 책과 기사에도 Amnok River 혹은 Amnokgang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별 고민 없이 Yalu라는 국제사회의 통칭을 답습한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선 우리의 영어 지명 표현을 우리 식으로 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 우리 집안 단속부터 한 후에 국제사회에 일방적인 수정을 요청하기보다 병기를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외국사람들이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통칭을 버리고 병기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우리의 지명 바로 알리기 작업을 포기할 수 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압록이냐 야뤼냐는 같은 글자를 달리 읽은 지방언어(일종의 방언)에 불과하기에 그렇게 문제가 심각하지는 않다. 보다 심각한 것은 두만강(豆滿江)의 경우이다. 이 강의 국립국어원 영문 표기 방식은 ‘Dumangang’이다. 그런데 이 강의 국제적 통칭은 ‘Tumen’이다. 이는 두만강(豆滿江)을 중국어 발음대로 적은 것이 아니라 중국이 주장하는 ‘도문강’(圖們江)의 영문표기다. 이 경우 야뤼보다 더 복잡한 역사적 문제가 복합되어 있으며 지명 조정의 과정이 더 지난할 것으로 예견된다. 얼핏 보기에 별 차이 없어 보이는 두만, 도문, 토문 3개 지명에 대한 구별 문제가 연관되어 있다.

1712년 조선과 청나라와의 사이에 국경을 획정한 백두산정계비에 의하면 압록강과 토문강(土們江)을 사이로 국경을 정한다고 나와 있다. 또한 1909년 일제가 주도한 간도협약에 의하면 청과 대한제국의 경계는 도문강이라고 했다. 우리는 현재 도문강과 두만강이 같다는 데에는 동의하나 토문강은 도문강과 달리 백두산 북쪽에 있는 별도의 강으로 송화강과 합류하는 지류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일제가 광대한 만주 개발을 대가로 간도를 청에게 넘기려고 맺은 간도협약은 우리 민족의 의사와는 반하여 청과 맺은 조약이므로 무효이며 백두산정계비의 토문강이 진짜 경계이고 결국 간도는 우리 땅이라고 간주한다. 반면 중국은 토문강이 곧 도문강(두만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토문과 도문, 두만의 3자 표기 문제는 간도 영토분쟁과 관련된 복잡한 과제이다.

따라서 우선 우리 내부 문헌부터 Duman으로 수정한 후 국제사회에 홍보하여 현재 중국에서 圖們江으로 지칭하는 강이 두만강임을 알려야 한다. 그 후 병기 작업을 추진해야 하는데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는 않다. 그 다음에 토문강과 두만강이 같지 않음을 조심스럽게 언급하여 간도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지명을 우리 식으로 바로 잡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압록-야뤼의 경우는 정치적 문제가 별로 개재되지 않고 단지 한자를 읽는 발음의 문제가 상이한 차원이므로 상대적으로 간단하지만 일단 한자도 다른 두만-투멘은 영토문제가 우회적으로나마 연관되어 있어 우리 지명 알리기가 보다 더 어렵다. 더군다나 영토문제에다가 정치-외교 쟁점까지 얽혀 있는 독도문제는 더 지난하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구한 후 조용히 홍보하여 상대방과 국제사회를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